하다 이야기
매번 진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기겠다 다짐하고, 두 주먹 불끈 쥐어도 진다. 진통제를 털어 넣고,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글귀를 주절주절 읊조리며 마음을 다잡아도 진다. 만반의 준비를 해도 진다. 그렇게 생리는 늘 나를 이기고, 내가 지게 한다.
지긋지긋한 패배감은 아무리 경험치를 쌓아도 쓰디쓰다. 그 무력감 앞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그 와중에도,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도 얻는 게 하나 있긴 있다. 생리주기가 지나면 뇌를 가득 채우는 ‘의욕’이다. 생리가 빠져나간 자리에 ‘의욕’이 자리잡기라도 한 것 같다.
생리 시작 1주일 전부터 세상 모든 우울과 불안과 무기력이 어깨에 올라탄다. 본격적으로 생리가 시작되면 몸까지 엉망진창 대환장쇼의 무대가 된다. 입맛도 없고, 좋아하는 아이돌 덕질도 노잼이 되고, ‘살아서 무엇하랴’ 허무의 노예가 된다. 그런데 생리가 끝날 무렵이면 시들었던 식물이 허리를 곧추세우는 것처럼 힘이 생기고, 몸에 생기가 돈다. 삶, 취미에 대한 의욕이 스르르 몸을 일으켜 고개를 바짝 들고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잠시 덮어둔 공부 계획표를 꺼내 빨간펜으로 수정을 하고, 더 세세하게 일정을 추가하고, 읽으려고 샀지만 왠지 택배 상자를 뜯는 순간 흥미가 떨어졌던 책들도 당장 읽기 시작하고, 소원했던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만날 약속을 하고, 먼지가 뒹구는 방을 걸레질하고, 이불도 탈탈 털고, 패브릭 퍼퓸까지 뿌린다. 생리가 끝났을 뿐인데, PMS 포함 2주의 생리주기가 지나갔을 뿐인데 인생의 황금기라도 펼쳐진 것처럼 바뀐다.
생리가 지배한 2주가 너무 어두워서 상대적으로 그 후는 밝게 느껴질 수도 있다. 생리가 나를 꽁꽁 묶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가 풀려나서 상대적으로 더 자유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치솟은 '의욕' 덕에 컨디션 역시 좋아진다. 잠을 설치고, 아무거나 대충 먹어서 허기만 채워도 훨훨 나는 저 꾀꼬리처럼 콧노래가 흥얼흥얼 절로 나온다.
생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싫은 것 투성이지만, 의욕이 활활 타오르게 하는 점은 매우 좋다. 그 의욕충만 시기도 보름이면 끝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이것저것 하려다 PMS 때부터는 팍 시들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이렇게 의욕에 불탔다가 다시 식는 걸 계속 반복하면 언젠가는 계속 의욕이 가득 차서 생리를 이길지도 모르잖아? (이것 역시 생리가 끝난 후 차오른 의욕 덕에 할 수 있는 말.)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