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버 이야기
항상 그렇듯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고, 센서가 작동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그걸 아주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설마 하는 희망은 피어나며, 그건 잔혹한 운명에게 보란 듯이 짓밟히곤 한다.
스무 살 이후로는 학기 중에 가끔 주말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는데 한 번은 아웃렛에서 간식거리를 파는 일을 했다. 연달아 두 번의 주말과 한 번의 월요일 포함 총 5일 동안. 천막 하나 쳐진 야외의 불판 옆에서 조리된 음식을 가져다 세팅을 하고, 결제를 하고, 또 세팅하고 결제하고… 게다가 그때 더웠다. 유니폼은 내가 싫어하는 핑크(그것도 핫! 핑크) 색에, 함께 지급된 네이비색 모자 안에는 열기가 고였다.
심지어 첫 주는 PMS 기간이었다. 아이고, 주여. 거의 열두 시간을 불판 옆에 서서 일 하는데 허리는 점점 아파오고 다리는 띵띵 붓었다. 두통은 기름 냄새와 함께 점점 더 심해지고, 속은 울렁거렸다. 혹시나 생리가 시작될까 계속 신경 쓰이는데 손님은 끝없이 몰려오고… 2~3시간마다 쉴 수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익숙하지 않았으며, 혼자 바쁜 게 아니라 다 같이 바빴으니 쉰다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아 진짜, 나 이러다가 골로 가겠다. 그냥 집에서 쉴 걸 뭐한다고 주말에 알바를 한다고 했지. 오늘 이거 먹는 날인가? 왜 이렇게 여기만 몰리는 기분이지? 악, 저기요! 쓰레기통 저 뒤쪽에 있잖아요. 거기 버리시면 안 된다고요. 젓가락 통인데 네가 쓴 휴지를 버리시면 어떡합니까, 이 양반아. 아… 집에 가고 싶다.’
정도까지 생각하고 나니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힘들지? 하며 쥐여 주신 탄산음료 한 캔을 들고 구석에 박힌 벤치로 가려하니…
1단계는 슬픈 예감과 센서 작동. ‘생리 터진 것 같다. 퇴근하려면 5시간은 남았는데… 큰일 났군.’
2단계는 희망과 부정. ‘설마, 아니겠지. 잘못 느낀 거겠지. 아직 때가 아닌데.’ 이 단계에서 희망을 무너뜨릴 현실의 냄새를 맡고 생리대를 챙겨 화장실로 걸음을 돌렸다.
3단계는 확인(+약간의 안도). ‘아, xx… 그래도 다행이다. 라이너가 날 살렸다. 과거의 나 잘했다.’
4단계는… 원망과 부정 2. ‘아니, 근데 진짜… 왜 이래, 나한테? 굳이? 여기서? 진짜로? 생리를?’ 대충 이렇게 4단계를 거쳐 겨우 수긍했다.
5단계 수긍. ‘xx, xx, xx! 아오, 어쩔 수 없지.’
그 뒤로는 어떻게 일했는지 모르겠다. 또 손님들이 몰아쳤고, 다행스럽게도 기온이 조금 떨어졌고, 해가 떨어진 뒤로는 나름 한가했다. 그렇게 퇴근 시간이 되었다. 다른 직원분께서 집에 가져가라며 챙겨 주신 간식거리들을 들고 화장실로 가 기름 냄새에 찌든 유니폼과 모자를 벗자 해방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해방도 잠시, 이번엔 생리통이었다. 정신없이 일하느라 느끼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이제 시작된 건지 모르겠지만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갑자기 시작되었으니 당연히 진통제도 테이핑도 핫팩도 없이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다음엔 여기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생리통을 잠재우기 위해 내가 해 본 일들!). 약국에 들러 약을 살까 싶었지만 멀지 않은 거리에 집이 있고, 약국은 돌아서 가야 했기 때문에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가방과 함께 간식거리가 가득 든 쇼핑백 두어 개를 들고, 허리를 짚고, 발걸음을 옮겼다. 식은땀이 났다.
역에서 집까지 가는 데에 평소의 1.5배 이상의 시간을 들인 것 같다. 걸음이 빠른 축에 속하는데도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아랫배에 충격을 주었다. 누구 보고 데리러 나와 달라고 할 걸 싶었지만 이미 늦었고, 얼레벌레 걷긴 걸었다. 마지막 횡단보도를 앞두고는 그냥 눕고 싶었다, 그 자리에. 하지만 난 문명인이고 고등교육을 받았고 어쩌구니까 그럴 수 없었다.
이성을 다잡고 문명인으로서의 지위를 지켜냈다. 깨끗이 씻고 약을 먹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들었다.
난 생리 주기가 규칙적인 편이야. 오늘처럼 종종 컨디션에 따라 며칠 차이가 생기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래. 그리고 난 생리를 일주일 꽉 채워서 해. 그건 무슨 뜻이냐, 삶의 1/4를 피 흘리며 보내고 있다는 얘기지. 게다가 생리 전 주에는 PMS도 있지? 소화는 당연히 안 되고, 허리가 쿡쿡 아프고 가슴이랑 다리는 팅팅 부어. 그것뿐이게? 자잘한 두통까지 머리를 쿡쿡 찌르잖아. 그러니까, 30일 중 약 14일을,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시간을 생리+@와 함께 지내고 있는 거야.
이쯤 해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과연 대비라는 게 의미가 있나? 삶의 절반을 아프거나 불편하거나 생리 중인 상태로 보내는 나에게? 항상 그렇듯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고, 센서가 작동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데… 설마 하는 희망은 피어나지만, 곧 잔혹한 운명에게 보란 듯이 짓밟히곤 하는데 말이야.
하고 싶은 얘기 다 했다. 그렇다. 이 생각의 결론은 없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고 그런 생각을 해 봤다는 거지. 아, 기약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여러분의 ‘그런 일’과 ‘그런 생각’을 듣고 싶다. 그런 기회가… 올까… 오겠지…? 일단은 우리가 더 커야 하니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 일하러 갑니다. 안녕!
- 앰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