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 중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만나기 어려울까? 직장 상사를 만나기 어려울까?
내 생각엔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직장 상사 만나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S군, 좋은 생리대를 만들어 매달 배송하면 어떨까?
뜬금없다. 난 중학생 무렵부터 IT 업체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고, 목표를 이루며 나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웬 생리대??
이렇게 나의 2019년이 시작되었다.
나는 엄마, 큰누나, 작은누나, 여자 조카 넷, 와이프 그리고 딸까지 여성에 둘러싸여 지냈고, 지내고 있다. 하지만 ‘생리’라는 것에 관심이나 있었던가? 처음 몇 달간 정말 치열하게 생리에 관해 공부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생리 관련 이야기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가족, 친지, 친구를 만나며 생리 이야기를 했다. 별별 생리대를 다 사다가 별별 테스트도 다 해봤다. 직접 생리대 착용을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자, 이제는 우리의 생리대를 만들 차례다.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가릴 것 없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무시당하고, 좌절도 했지만, 열심히 다녔다. 그 노력 끝에 내 딸과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지금의 ‘나도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2019년이 지나갔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른다지만, 내가 생리대를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반대로 도전하지 않았다면 누나가 왜 갑자기 짜증을 내는지, 와이프가 왜 누워만 있는지, 직장 동료가 어떤 시기만 되면 왜 말이 없어지는지 아는 척만 했지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딸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겠다’ 다짐했지만, 딸의 어려움을 공감하지 못하는, 2% 부족한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예전 출근길에 듣던 노홍철의 라디오 엔딩 멘트인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는 말을 참 싫어했다. 도전하고 싶지만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싶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하다. 중학생 때부터 꿈꿔온 일을 이루며 살아왔기에 지금까지는 인생에 큰 굴곡이 없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영원히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생리대'를 공부하며 비로소 인생의 굴곡이랄 수 있는, 많은 고비를 만났다. 두렵고, 고통스러웠지만 새로움이 주는 신선함과 즐거움 그리고 보람이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노홍철의 말이 나에겐 맞았다. 제길. 분하다. 하지만 아직 저 말에 100%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한 번 꼬아 이야기해보자면
고단한 오늘을 버텨내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모두 대단한 도전이며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이는 숫자부터 생소한 2020년을 임하는 내 마음이기도 하다.
- 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