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신비롭고, 아찔한

하다 이야기

by 오늘

2018년 겨울, 신종플루에 걸렸다. 거인이 내 몸을 짓누르고, 목에서 자꾸 쇳소리가 났다. 처음엔 단순 감기인 줄 알았다. 그때 간 병원에서도 감기약만 처방해줬다. 꼬박꼬박 약을 먹어도 거인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목은 더 붓고, 콧물은 마르지 않고, 열까지 났다. 감기는 약을 먹어도 1주일, 먹지 않아도 1주일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매우 아팠다. 흔히 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라는 표현이 딱 맞을 만큼 무척 아팠다. 보통일이 아니다 싶어 다른 병원에 갔다. 의사님은 콧속에 면봉을 넣었다 빼고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신종플루예요. 앞으로 5일 동안 약 꾸준히 먹어요. 외출은 삼가고요. 알죠?


밖에 나갔다가 남에게 옮기면 큰일이니 집에 콕 박혀 있었다. 음식을 배달시키는 것도 전염이 걱정돼 짝꿍이 사다 주는 밥만 야금야금 받아먹었다. 신종플루가 내 몸의 기운을 1g도 남기지 않고 쪽쪽 빼서 손이 덜덜 떨렸다. 숟가락을 들었다가 떨어뜨리고, 3분이면 끝날 양치질이 5분 넘게 걸렸다. 그런데 웬걸. 생리까지 시작했다. 신종플루에 신경 쓰느라 생리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얇은 화장지처럼 나풀나풀한 몸으로 생리까지 하니 기운이 더 빠졌다. 의욕은 충전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신종플루 치료제를 먹으면 속이 울렁거려서 몇 번을 토했더니 직립보행이 불가능했다. 가만히 누워서 TV 보다가 지겨우면 책 보다가 지겨우면 노트북으로 영화 보다가 그마저 지겨우면 잤다. 하루는 시간과 상관없이 나의 컨디션에 따라 흘렀다. 낮과 밤이 뒤섞이고, 아침 점심 저녁 세 끼의 시점이 바뀌었다.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몸 한구석에 빨간불이 켜지면 나머지는 전심전력을 다 해 파란불을 켤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신종플루에 걸렸음에도 생리가 시작된 걸 보고 나의 믿음은 허상이라는 걸 제대로 느꼈다. 물론 그 ‘믿음’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생리가 예정일에 맞춰 제대로 시작하는 게 몸에 또 다른 이상이 없음을 알려주는 것이긴 하나, 하… 아니, 인간적으로 어느 한 부분에 에너지를 팍팍 쓰고 있거나, 온 신경이 모여 있으면 다른 데는 잠깐 가만히 있거나,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신종플루에 생리까지 겹치면 어쩌라는 거냐고. 기운이 없어서 손이 덜덜덜 떨리는데 그 와중에 굳이 그래야 하냐고.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면 안 되냐고. 하나만 앓기에도 벅차다고.


놀라운 건, 이렇게 생리는 생리 혼자만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꼭 다른 것과 함께 오거나, 번갈아 온다. 걔들은 한 번 훑고 지나가면 끝이지만, 몸은 원상태로 되기까지 오래 걸린다. 생리가 끝나고, 신종플루가 사라져도 손은 계속 떨렸으니까.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하면 된다는데, 글쎄. 그런다고 신종플루와 생리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정말 그럴까? 과연 그럴까?


-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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