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즈와 길모어 걸스

하다 이야기

by 오늘

‘서사’를 좋아한다. 정말 무척 엄청 많이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서사가 담긴 소설, 드라마, 영화 다 좋아한다. 그중 ‘드라마’에 굉장히 몰입했던 시절이 있다. 대학교 입학 실기시험 보는 날에도 아침 6시까지 미드를 보고, 시험을 봤을 정도이다. 한드는 당연하고 일드, 미드, 영드, 대드, 중드, 스드 가리지 않는다. 지금은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등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편하게 볼 수 있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특정 사이트에 비용을 지불하고 보거나, 거기에 없는 작품은 어둠의 경로로 보고, 외국 다녀오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봤다. 자막 없이 영상만 보다가 자막 뜨면 다시 보고, 드라마 커뮤니티가 생기면 외국어 능력자에게 자막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서 보고. 매일 컴퓨터를 마주하고 그런 일을 반복했다.


지금까지 본, 많은 드라마 중 계속 반복해서 보고 또 보는 건 단연 ‘프렌즈’와 ‘길모어 걸스’이다. 프렌즈는 ‘친구인 여섯 인물의 일상 이야기’고, 길모어 걸스는 ‘엄마와 딸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프렌즈는 시트콤 답게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진행하고, 코믹하며, 시청자가 마치 방청을 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방청객 웃음소리를 담았다. (그걸 통해 웃어야 할 지점을 알려주는 효과도 있다.) 길모어 걸스는 16살 때 혼자 딸을 낳은 주인공과 그 딸이 성장하는 게 큰 줄기라 프렌즈보다는 좀 더 심오하며, 현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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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를 지금 보면 각종 차별과 비난의 범벅이라 ‘아, 불편한데… 많이 불편한데…’ 움찔움찔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본다. (영원한 나의 길티 플레져.) 성인이지만 미취학 아동 같은 행동을 하고,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늘어놓으며 각자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도대체 왜 저러나 싶을 때도 정~말 많은데 보게 된다. 나이를 먹어도, 사회적 위치가 달라져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재지 않고 함께 웃고, 떠들고, 서로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나에겐 일종의 ‘환상’이다. 그 환상을 프렌즈가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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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어 걸스는 주인공인 엄마와 딸을 비롯 모든 등장인물의 입담에 압도된다. 은유와 비유가 많은 대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영화 드라마 음악 얘기도 줄을 잇는다. 명문고, 명문대에 진학하는 딸은 엄청난 독서가라 ‘독서욕구’도 자극한다. 매사 얼렁뚱땅 넘어가고, 농담에 혼을 빼앗긴 것처럼 말장난을 이어가는 엄마, 그런 엄마와 핑퐁을 이어가는 딸, 두 주인공 주변에 머무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의 하모니. ‘스타즈 할로우’라는 마을에 사는 그 사람들을 상상할 때마다 그곳에 가서 함께 살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은 프렌즈와 길모어 걸스가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작품을 통해 미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어느 장면에서 어떤 대사가 나올지 훤히 보이는 한국 드라마 말고도 신선하고, 재미있는 드라마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만들어진 지 오래 됐고, 나도 나이를 먹어 지금 보면 ‘저건 좀 별론데?’ 싶은 구석도 수없으나, 주기적으로 다시 보는 건 처음 봤던 그 시절로 돌아가 ‘색다른 재미’에 매료된 나를 마주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늙고, 세상이 달라져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며 변함없이 날 맞아주는 그들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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