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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럼 Nov 24. 2015

한국,일본,북한 그 어느 학교도 아닌 우리학교

우리학교

우리학교

마지막 졸업식 장면을 볼 때 불현듯 초등학교 졸업식날 울음을 터트린 여자애가 생각이 났다.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여자애였는데 그때의 난 도무지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졸업식날 운다는 건 이제 이 학교를 다니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선생님과도 안녕 친구들과도
안녕 정들었던 이 공간과도 안녕 분명 그게 큰 이유일진대,


내 판단에 담임과의 안녕은  울기는커녕 박수 치며 기뻐할 일이었고 친구들과의 안녕을 따지기엔 집 근처 중학교 둘 중에 하나에 배정받을게 뻔한데다 어차피 좁은 동네 우연히 마주칠 때가 필연일 정도로 많았으니  그런 상황에서 정들었던 공간과의 안녕 따위가 당최 뭐 대단한 일이길래 졸업 그게 뭔데 널 울려 울리냐 하는 초딩의 마지막 답지 않은 논리적인 이유였는데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식도 별 의미는 없었다. 핸드폰과 인터넷이 있는데 마음만 먹는다면 만남 따위는 우스운 일, 석별의 정따윈 노래 가사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학교란 나에게 별다를게 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애교심이 없는건 남중,남고를 나와서 그런게 아닐까...

우리학교의 아이들에겐 달랐을 거다. 차별과 멸시 속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들에게 우리학교는 살아가는 힘이자 살아야 할 이유를 제공해 주는 유일한 곳이었을 거다.
감상을 너무 늘어놓았는데 정리할 자신이 없으니 섣불리 물음을 던져보자.
이 학교를 지켜주는 곳은 어디인가?
북조선인가? 한국인가? 아님 학교가 있는 이 곳 일본인가?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 몰랐던 것도 아니고 일찍이 박치기를 보고 비슷한 류의 감동을 소비한 적도 있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없어 1시간씩 일주일간의 차를 두고 쪼개어 봤던 터라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이니 갈라진 조국의 아픔이니 하는 기대되는 감정을 느끼기엔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원산항에 닿을 때 발이 아닌 손으로 조국 땅을 디디는 모습들, 북한 주민들과 한모 습이 되는 모습들, 여기서는 저고리를 입고 우리말을 해도 괜찮으니깐 이라며 벅찬 가슴으로 말하는 모습들에서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똑같이 일본내 조선인이 소재라 그런지 영화 박치기와 정서가 매우 비슷하다


영화 하나로 조국이니 분단의 아픔이니 아님 소수자의 차별이 이를 논하기엔 쓸데없는 먹물이 너무 들었나 보다. 솔직히 그들이 밟은 기묘할 정도로 깨끗하고 고요한 평양의 모습은 동의하지 못하겠다.

일깨워주는 거지. 조국이니 나라니 우리한텐 너무나도 당연해서 중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깐. 다수인 우린 차별에 익숙하지 않아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깐. 그런 것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준다면 우리학교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현실은 조금씩 변해갈 테니깐.

다 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말하자면 아기가 생겼다는 선생님을 안아주면서 축하해줄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러우니깐.


개봉 당시 10만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고 하는데 이런 영화를 사랑할 수 있는 우리나라 관객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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