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깊은 바다 Mar 31. 2024

낮잠 예찬

피로를 는 데 이보다 좋은 게 있을까? 시간 대비 효율로 따지자면 최고의 효과를 나타낸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습관으로 활력을 얻는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25년 전쯤이다.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화물선을 탔다. 내 직책은 3기사였고, 기관실에서 기계를 유지 보수하는 게 업무였다. 우리 배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곡물을 실어 날랐는데, 미국까지 가는 데는 17일쯤 걸렸다. 우리 배는 당직제로 근무했다. 3기사는 8시부터 12시, 20시부터 24시까지 총 여덟 시간 일했다. 물론 특별한 일이 없을 때만 그렇다.


배를 타자 힘든  한둘이 아녔다. 그중에서도 아침에 일어나는 건 매일매일 고역이었다. 한참 젊을 때라 아침잠이 많았기 때문이다. 방에서 기관실까지 가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요기라도 하려면 일곱 시 2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시차라도 생기면 더 멍하게 출근했다. 기관실 온도는 40도가 넘었다. 기계를 고치다 보면 작업복은 기름과 땀으로 범벅이 되고, 몸은 녹초가 됐다. 힘들수록 시계를 보는 횟수도 잦아졌다. 기다리던 열두 시가 되면, 세수하고, 근무복으로 갈아입었다. 점심은 먹는 게 아니라 삼키는 것 같다. 선원들의 식사 속도는 대부분 비행기처럼 빠르다. 젊은 선원들은 식사를 마치면 곧장 방으로 갔다. 근무복은 한구석으로 던져 버렸다. 소파에 누우면 곧장 곯아떨어졌다. 30분쯤 자고 나면, 피로는 가셨고, 머리는 맑아졌다. 달콤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꿀잠이라고도 하나 보다.


지금도 점심은 회사에서 먹는 게 가장 좋다. 가끔은 누가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해도 탐탁지 않다. 외식하면 식사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커피까지 마셔서 더 그렇다. 열두 시 40분이 다가오면 시계에 자꾸 눈이 간다. 낮잠을 자야 해서다. 그래야 오후에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그러지 못하면 오후 내내 몸이 축 처지거나, 정신이 몽롱하다.

    
낮잠을 잘 자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식사를 마치면 공원을 20분쯤 걷는다. 그래야 더 깊게 잘 수 있다. 아이스커피를 산다. 의자에 앉는다. 유튜브에서 ‘낮잠 자는 음악’을 검색한다. 마음에 드는 걸 아무거나 고른다. 이어폰을 낀다. 의자를 젖히고 눈을 감는다. 낮잠 시간은 20분이 딱 좋다. 한 시가 되면, 눈이 떠진다. 5분쯤 넘어서 눈을 뜨면 민망하긴 하지만, 더 개운해서 좋다.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든다. 몸은 더 개운해진다.

 
낮잠의 효과는 다양한 연구 결과로도 입증됐다. 2012년 중국 남서대학교의 다용 자오가 이끄는 연구진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몇 분이라도 낮잠을 자면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하버드대의 의학자 디미트리오스 트리코풀로스는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낮잠을 자면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37% 낮아진다고 한다. 다른 연구 결과에서는 심혈관 질환으로 죽을 위험이 훨씬 낮아진다는 게 밝혀졌다. 낮잠을 25분에서 30분 자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북돋, 기억력을 개선하고 창조성과 생산성을 향상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낮잠의 효능은 다른 잠에 비할 바가 아니다. 꼭 챙기고 싶은 습관이다. 힘들게 일하고 나면 더 소중해진다. 방전된 스마트폰을 급속 충전기에 올려놓는 것과 같이 힘을 얻는다.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의자에 몸을 맡기면 되니 이보다 쉬운 것도 없다. 비용도 들지 않는다. 낮잠을 예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홋카이도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