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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Jun 30. 2024

아내의 생일을 보내며

일 년에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 여러 번 있다. 부모님 생신, 아이들 생일, 결혼기념일 등이다. 그중에서도 조금 더 신경 써야 하는 날이 있다. 잘못 대처했다가는 한 주, 아니 일 년을 시달릴 수 있다. 나는 그런 사태를 방지하려고 한 달 전쯤, 스마트폰 일정표에 알람까지 설정해 뒀다. 며칠 전부터는 고민도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평화롭고, 사랑스럽게 그날을 보낼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6월 27일, 날이 밝았다. 여느 때처럼 새벽 다섯 시 50분, 운동복부터 챙겼다. 전자레인지 위에 냄비가 눈에 들어온다. 아내가 며칠 전에 끓여 둔 김치찌개 담겨 있을 것이다. '미역국이라도 끓여 줄 걸 그랬나!' 결혼한 지 19년이 지났지만,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내 상념이다. 그래서인지 현관을 나서는데,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헬스장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데, 윗도리가 보이지 않았다. 덤벙대는 건 오십이 가까워져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상의만 챙겨서 왔다. 그래서 가방에 바지만 신경 써서 넣었나 보다. 이거 살짝 불길하다. '오늘 운수를 암시하는 복선 아닐까!' 팔은 운동 기구를 있는 힘껏 당기고 있지만, 머릿속은 아내의 생일이 지배하고 있었다. 선물로 돈은 얼마를 주어야 할지, 편지에는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같은 시답잖은 고민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정답은 간단한다. 많이 주고, 잘 쓰면 된다. 문제는 부자도, 명작가도 아니라는 데 있다. 눈물을 뽑아낼 수 있는 글은 아니더라도 정성은 담겨야 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내가 일어나기 전에는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몸이 달아오르고, 땀이 맺힐 즈음,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샤워장을 들어 섰다. 옷을 갈아입는데, 정말 어색하다. 바지는 허리가 줄어서 주먹 하나가 넉넉하게 들어간다. 체크무늬 셔츠는 10년 전 과장님들이 자주 입던 옷 같다. 거울을 보니 촌티가 줄줄 흐르는 중년의 아저씨가 서 있다. 유행이 지난 옷이라 잘 안 입는데, 오늘따라 아무 생각 없이 이걸 집어 들었다.


시원한 커피를 타서 책상에 앉았다. 카톡으로 보낼 편지를 썼다. 아내 앞에만 서면 유치해진다. 글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연애할 때 받은 편지를 두고 지금까지 놀린다. 초등학생도 이것보다는 잘 쓰겠다고. 그 이후로 글쓰기를 오래 배웠고, 글도 꾸준히 쓰고, 브런치 작가이지만,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의 수준은 거의 그대로다. 하나 마나 하고, 추상적인 글들로 겨우 열 줄을 넘겼다. 감동도, 재미도 없다. 읽고 있자니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마지막 문단에 가로를 열고 비장의 문장을 썼다. 원래 보내려던 것보다 앞자리 숫자도 하나 더 높였다. (00만 원 보냈으니, 맛있는 거 사 먹어) 


전송을 누르고, 아내의 답장을 기다렸다. 30분쯤 지나서 아내의 카톡이 왔다. '고마워. 자필 편지를 받고 싶지만. 저녁은 나보고 쏘라는 거네.' 이 정도면 통과다. 올해도 기본은 했다. 아내는 고등학생 아들이 10만 원이 넘는 디올 향수 선물을 카톡으로 보냈다고 했다. 엄마 생일을 잊지 않고, 용돈을 아껴 선물을 보낸 게 기특하면서, 어떻게 그런 고급 향수를 골랐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제 아내의 화살은 마지막 과녁, 중학생 딸로 향했다. 딸은 엄마의 생일이 하필 월말이라는 게 원망스러울 것이다. 월초에 받은 용돈은 10일 지나서 바닥이 났고, 며칠 전부터는 나에게 조금씩 빌려 가서 근근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내는 딸에게 어떻게든 선물을 받아 내야겠다고 했다. 딸은 어버이날 때 썼던 편지를 조금 수정해서 카톡으로 보냈다. 공부를 안 해서 미안하고, 말 잘 듣겠으며, 용돈을 아껴 쓰겠다는 지키지 못할 상투적인 약속들이다. 그러고 보면 나를 너무 닮은 아이다. 그래서 어쩔 때는 미안하기도 하다. 아내는 지금도 딸을 압박하고 있다. 누가 승자가 될지 궁금하긴 하다. 내기한다면 나는 딸에게 걸겠지만.


저녁은 아내와 목포 부모님과 먹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옷이 계속 신경 쓰였다. 시간만 있으면 갈아입고 싶다. 장모님의 가게에 들어섰다. 아내가 나를 바라본다. 이 눈빛, 오랜만에 느껴 본다. 대학 시절 소개팅에 나갔다가 단박에 거절할 때 그 기분이다. 상대방은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뭐 이런 게 나왔어.' 그때는 모멸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미안하기만 했다. 이 바지는 내 허리길이가 최대였을 때도 품이 넓어 편안했다. 지금은 살을 빼서 2인치가 줄었다. 그러니 고등학생이 배불뚝이 아버지의 바지를 길이만 줄여서 입는 것 같았다. 아내는 옷이 뭐냐고 한마디 했다. '손님도 온다고 했고, 장모님과 장모님 친구도 있는데, 왜 하필 오늘.' 거기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장모님은 내게 "어제 옷은 멋지던데, 그거 입고 오지 그랬어"라고 했다.   


저녁은 참치 집으로 예약했다. 딸이 어디서 저녁을 먹냐고 물었지만, 아내는 학원에나 가라고 했다. 딸은 "엄마 생일인데, 마라탕 먹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했단다. 그게 화를 더 돋웠나 보다. 아내는 딸은 회를 먹을 자격도 없다고 성을 내더니, 거의 반은 집에 가져간다고 포장했다.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아들에게서 머리가 아프다고 전화가 왔다. 기숙사에서 아들을 데려오기로 했다. 아내는 다음 주 시험인 아들에게 공부도 하지 말고 푹 자라고 했다. 아들은 자기가 지금 자면 좋아할 애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는 의욕도, 욕심도 있는 것 같아서, 잠시 뿌듯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주 슬픈 말이다. 학교의 친구들이 동반자가 아니라 경쟁자라는 의미다. 아무튼 자기 몫을 다하는 아들이 대견할 따름이다. 


아내의 마흔일곱 번째 생일은 잘 마무리되었다. 19년을 같이 살면서, 아주 크게 이뤄 놓은 건 없다. 아이들이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고, 크게 걱정할 것도, 부족한 것도 없으니 잘 살고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제 내후년이면 쉰 살이다. 교양뿐만 아니라 외모, 복장에도 신경을 써야 할 나이다. 내년이면 결혼 20주년이다. 내년 음력 5월 22일에는 미역국을 끓이려고 한다. 시원한 바지락과 담백한 닭고기가 들어간 게 좋겠다. 그 맛이 아내 성격과 비슷할 것 같아서다. 아내가 나를 바라볼 때 눈빛이 흔들리지 않도록 멋진 옷도 챙겨 입어야지. 어제부터 장마가 시작됐다. 올해도 큰 행사를 끝내고 보니, 벌써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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