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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Jul 13. 2024

브런치에 내 삶을 채우는 이유

2019년 10월 1일을 다시 기억할 수 있는 건 순전히 글 때문이다. 새로운 공간에 내 글을 처음 채운 날이라서 더 그렇다. 인터넷 글쓰기 공간인 브런치에 5년 동안 144편의 글을 썼다. 구독자는 140명이다. 글을 써온 기간이나, 작품 수에 비하면 적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 쓰는 데 큰 힘이 되는 소중한 분들이다. 다음 카페,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보다는 주로 브런치에 글을 쓴다. 브런치는 힘과 매력이 있다.


예전 썼던 글을 애써 외면해 왔다. 생각만 해도 오글거린다. 오래전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그래도 창피하지만, 용기를 내서 읽다 보면 마지막에는 미소가 번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게 내가 쓴 글을 직접 읽는 재미다. 첫 글의 제목 <글쓰기의 시작>이다. 평생교육원 글쓰기 수업에 처음으로 낸 숙제였다. 언제나처럼 조금은 부끄럽게 글을 읽어 나갔다.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 작가가 됐지!'였다. 브런치에 글을 쓰려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나도 당연히 그 절차를 거쳤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하면 작가라는 멋지지만 때로는 부담스러운 호칭을 얻는다. 그 과정을 여러 번 떨어졌다는 글도, 합격 비법을 담은 유튜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시련을 안겨 주는 그 관문을 단번에 통과했다. 답은 두 개 중 하나일 것이다. 내 글을 심사한 분이 맘이 넓은 천사였거나, 내가 신청서만 화려하고 거창하게 써낸 허풍쟁이였거나.

  

글의 문체는 때가 덜 타서인지 풋풋했다. 하지만 내용과 깊이는 한없이 얕았다. 분량도 내 사유의 크기만큼이나 짧다. 네 문단에는 수업에 참여하게 된 이유와 계획이 담겨 있었다. 전자는 글을 쓰면서 지적 역량을 키워 품격 있는 말을 하고 싶다는 거였고, 후자는 열심히 해 보겠다는 거였다. 지금 시점에서 평가해 본다면, 나는 달변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쓰기는 했다. 브런치담긴 글이 그 노력을 증명하고 있다. 


나는 일상을 주제로 글을 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문장을 짓고, 웃기는 글로 재미를 주거나, 슬픈 글로 마음마 울리는 작가가 많다. 그들은 내 경쟁 상대가 아니다. 그들만큼 쓰려고 힘을 들이거나, 부담을 느끼지 말자는 의미다. 내가 그들보다 잘 쓸 방법이 있긴 하다. 내 삶이 글감이 되는 거다. 자세하고, 솔직하게 드러낸다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 된다. 1918년부터 1941년까지 27년간 일기를 쓴 버지니아 울프는 <수필의 쇠퇴>에서 자신의 글을 쓴다면 영원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에 용기를 얻으며, 때로는 아주 사적이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글을 써내기도 한다.


열두 학기째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선생님은 매주 한 편 글감을 준다. 글벗들은 다 쓴 글을 선생님이 운영하는 다음 카페에 올린다. 수업은 스무 명이 넘는 수강생의 글을 고쳐가며 이뤄진다. 선생님은 비문과 단어의 중복, 논리적 오류를 찾아 다듬어야 할 방향을 세심히 알려 준다. 그렇게 고친 글을 다시 카페에 올린다. 그 공간은 마음 착한 주인이 내 준 포근한 전셋집 같다. 쫓겨날 염려도 없고, 불편하지 않다. 글벗들은 글이 올라오면 공감과 위로를 댓글로 남기며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내 집 아니라는 사실이다. 맘대로 사진을 걸 수도, 규칙에 어긋나게 꾸밀 수도 없다. 무엇보다 방학이 되면 잠시 집을 비워줘야 한다. 선생님은 편하게 글을 써서 올리라고는 하지만, 모두 떠나 버린 공간에서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네이버 블로그는 여행지의 펜션 같다. 맛집이나 여행지 탐방, 상품 후기 등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수필을 쓰는 나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공간다. 페이스북에는 가끔 글을 올린다. 페이스북 친구는 550명 가까이 된다. 회사 동료, 친구,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다. 내가 누구인지, 직장이 어디인지 드러나 있다. 나를 아주 잘 아는 사람도 많다. 글을 올리기 전에 내용을 철저히 자기 검열해야 한다. 괜히 글 때문에 구설에 오르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글을 올리고 나서 잠시 망설이다 내린 적도 여러 번이다.


내가 주로 글을 쓰는 공간은 브런치다. 브런치의 가장 큰 장점은 '작가 가면'을 준다는 데 있다. 내 필명은 '깊은 바다'다. 젊어서 배를 탔을 때 태평양을 항해했다. 그곳은 아주 파랬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밤이 되면 별천지가 되고, 바다에서도 달이 빛났다. 깊은 바다를 바라보며 고독 외로움을 이겨내고 삶의 위안을 얻었다. 그곳을 오가며 조금씩 성장하고, 육지에서 살아갈 지식과 힘도 생겼다.


이제 브런치가 아주 깊고 파랗던 그 바다를 대신하고 있다. 나는 작가 깊은 바다로서 글을 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글의 내용이나, 문체를 보고서 금방 유추해 낼 수도 있 것이다. 그래도 민을 드러내지 않아서 부담이 덜하다. 이런 이유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걸 잘 드러내지 않는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올리면서, 잘 아는 사람은 보지 않았으면 한다는 게 모순 같기도 하다. 아직은 필력이 부족하고, 내용도 알차지 못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같다.     


올해 들어서 나는 매주 한 편씩 올리려고 노력한다. 한 주도 빼지 않고 1년을 써야 52편이 모인다. 깊은 바다를 채우려면 턱 없이 부족한 양이다. 그래도 매주 한 편씩 글을 담다 보면 삶의 지혜는 차오를 것이고, 문장도 예전보다는 훨씬 좋아질 것이다. 내 첫 번째 글과 최근 글을 비교해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구독자들이 남겨 주는 댓글이나, 라이킷(브런치의 글에 좋다는 반응을 남기는 하트 버튼)은 글을 계속 쓸 힘과 동기 된다. 물론 그 모든 분이 내 글을 다 읽고, 좋아서 남긴 반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한 편을 쓰는 데 들어가는 힘과 노력만큼은 잘 안다. 그래서 다른 작가의 글을 한 줄이라도 읽으면 라이킷을 남기고 온다. 힘을 내라는 응원이다. 그리고 한 편을 다 썼으니 잘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차곡차곡 쌓이는 글을 볼 때면 글쓰기를 정말 잘했구나 싶다. 몇 년이 지나면 이곳에 더 많은 글이 남겨질 것이다. 나만의 공간인 브런치 깊은 바다에서 위안을 얻고, 글 썼던 시절 감정을 되새기며 행복하게 미소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브런치에 내 삶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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