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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진실을 감추지 않는다

by 깊은 바다

바다는 진실을 감추지 않는다.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면, 바다가 잠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가 바다에서 겸손하고, 정직해야 하는 이유다. 바다에서도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은 존재한다. 그날, 해양경찰로 일하는 우리에게, 바다가 보여주었다. 숨겨진 진실을. 그리고 희로애락을.


3월의 첫 번째 토요일, 군산항에는 서서히 봄기운이 스며들고 있었다. 7부두에는 대형 화물선이 크레인을 분주히 움직이며, 외국에서 싣고 온 화물을 부두에 내리고 있었다. 대리점 직원 김 씨는 선박에서 일을 마치고, 주차한 곳으로 걷고 있었다. 종종걸음을 하던 그가 멈춰 섰다. 그는 부두 쪽으로 다가갔다. 바다에서 기름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검은 기름이었다. 오염 띠는 플라스틱 쓰레기들과 뒤섞여 접안해 있는 배들 사이로 넓게 퍼져 있었다. 그는 전화기를 꺼냈다. “여보세요? 거기 해양경찰서죠?”


군산해양경찰서에 근무하는 김 계장은 은파 유원지에서 가족과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그의 주머니에서 전화기 벨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상황실이었다. “계장님, 부두에 검은 기름이 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어요.” 김 계장은 ‘검은 기름’이라는 상황실 직원의 말이 유독 뇌리에 생생하게 남았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볼게요.” 김 계장은 아무 말 없이 아내를 바라봤다. 아내 얼굴은 굳어있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짐작한 듯했다. “조심해서 다녀와. 오늘 저녁은 같이 먹을 수 있지?”


김 계장은 신고 장소로 차를 몰았다. 검은 기름이라면 중유를 연료로 쓰는 화물선이 유출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군산에는 이런 신고가 많지 않다. 그래서 더 당황했는지 모른다. 방제하면서 오염 행위 조사도 해야 한다. 시간이 늦어지면 혐의 선박이 출항할 수도 있다. 그는 차의 속도를 높였다.


김 계장은 20분 만에 부두에 도착했다. 바람을 타고 바다 냄새와 뒤섞인 기름 냄새가 은은히 밀려왔다. 부두 안벽으로는 갈색 기름이 길이 200m, 폭 30cm 크기로 퍼져있었다. 기름띠는 조류를 타고 서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김 계장은 방제과장에게 전화했다. “과장님, 방제부터 해야겠습니다. 화물선에서 흘러나온 폐유 같은데, 조사도 빨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방제과장은 직원들을 비상소집하고 방제 작업을 지시했다. 오염원 조사는 김 계장이 맡기로 했다.


신고 시간에 부두에 있던 배는 화물선 두 척과 B호에서 폐유를 옮겨 실은 폐유운반선이었다. 김 계장은 그 선박부터 용의선상에 올렸다. 먼저 신고자와 현장에 있던 사람을 대상으로 탐문했다. A호가 부두에서 출항하면서부터 기름이 보였다는 의견과 B호가 폐유 이송 작업을 하면서 유출했을 거라는 의견으로 팽팽히 나뉘었다. 김 계장은 항만 구역 시시티브이(CCTV)를 확인했다. 영상에는 움직임 없는 선박, 바쁘게 오가는 작업 차량과 인부, 하늘을 나는 갈매기만 찍혀 있었다.


목격자가 없다면 해양오염 행위를 적발하는 게 몇 배는 힘들어진다. 이제 선박을 정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김 계장은 4만 톤급 화물선 B호에 올랐다. 필리핀 당직자는 워키토키로 선장에게 해경이 방문했다고 보고했다. 필리핀 선장과 기관장이 함께 내려왔다. 김 계장은 그들에게 방문한 이유를 설명했다. 기관장은 오전부터 배 주변에 유막이 조금씩 보여 선원들에게 확인했지만, 기름이 나갈 만한 작업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기관장의 얼굴과 말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김 계장은 선원들에게 협조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선체 외판에 기름이 묻었는지부터 조사했다. 배는 방금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깨끗했다. 기관실로 내려갔다. 김 계장은 해경에 들어오기 전에 외항선 기관사로 일했다. 그때 탔던 배와 크기가 비슷했다. 기관실 바닥은 관리를 잘해서 기름 한 방울 없이 깨끗했다. 폐유가 나갈만한 곳의 펌프와 파이프를 분해해서 검사했다. 김 계장이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김 계장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미 출항한 A호가 범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군산 외해로 통항했던 수십 척의 배를 조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B호는 출항하려고 하역 작업을 서두르고 있었다. 기관부 선원도 여러 장비를 살피느라 바쁘게 오갔다. 김 계장은 조사팀원에게 말했다. “아직 혐의점은 없지만, 선박 기관실과 폐수, 폐유 탱크 곳곳의 시료를 채취합시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김 계장은 전화를 걸었다. “분석계장님, 우리 지금 좀 급합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청사에도 어둠이 내렸다. 분석계장은 분석실의 불을 켰다. 시료가 도착하는 대로 분석할 수 있도록 장비도 준비했다. 군산에서 보낸 시료는 여덟 시가 다 돼서 도착했다. 분석계장은 김 계장 말에 신경이 쓰였다. “조사 선박에서 혐의점을 찾지 못했어요. 머리가 아프네요.” 그의 말투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현장에서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면, 분석 결과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컸다.


분석계장은 분석요원들에게 사고 개요를 설명했다. 내일 아침에 출항하는 선박이라서, 최대한 빨리 분석 결과를 내줘야 한다고 했다. 날을 샐 것 같지만, 힘내자고 팀원들을 다독였다. 커피믹스를 마시던 김 주무관이 말했다. “군산서 직원들이 현장에서 더 고생하죠. 아무튼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겠네요.”


분석요원들은 총 열다섯 점의 시료에 번호를 매기고, 분석을 진행했다. 분석 데이터는 자정이 넘을 무렵부터 차례로 나왔다. 김 주무관은 1번부터 5번까지 해상 시료 그래프를 자세히 살폈다. 풍화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시료는 2번이었다. 2번을 대표 시료로 선정해 B호 시료와 비교했다.


새벽 네 시경, 김 주무관이 손을 흔들며, 또렷한 목소리로 분석계장을 불렀다. “계장님, B호 폐유 탱크에서 뜬 9번 시료와 해상 시료가 매우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의자에 앉아 깜빡깜빡 졸던 분석계장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김 주무관이 뽑은 데이터를 숨죽여 판독했다. 크로마토그램의 바탕선, 피크 분포 형태가 매우 흡사했다. 분석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 주무관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모르니 2차 정밀 검사까지 해 보고 결과를 알려 줍시다.” 다행히, 마지막까지 원하던 결과가 나왔다.


분석계장의 연락을 받은 김 계장은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불법 행위 선박을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1차 조사에서 특별한 게 없었다는 불안감이 엇갈렸다. 게다가 B호는 네다섯 시간 전에 호주를 향해 출항했다. 1차 조사에서 혐의점을 찾지 못해 B호를 계속 잡아 놓을 수 없었다. 외항선의 시간은 비용뿐만 아니라 거래처와의 신용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 버리면, 한국에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김 계장은 조급해졌다. 선박위치정보시스템으로 조회해 보니, B호는 군산항에서 30마일 떨어진 십이동파도 앞을 항해하고 있었다.


김 계장이 탄 경비함정은 차가운 바람과 철썩이는 파도를 가르며 B호에게 다가갔다. 경비함정 부장은 해상용 송수신기로 B호를 불러 정선을 명령했다. B호는 멈춰 섰고, 경비함정은 너울을 타고 서있기조차 힘들게 좌우로 흔들렸다. 경비함정이 B호에 가까이 붙자 김 계장은 B호에서 내려 준 사다리를 잡고 힘겹게 배에 올랐다.

기관장은 어리둥절해했다. 이미 조사를 마쳤고, 기관사들에게도 기름을 배출할 만한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다짐을 여러 번 받았기 때문이다. 김 계장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기관실 바닥부터 창고까지 곳곳을 뒤졌다. 숨겨둔 파이프나 펌프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은 커졌다. 정확하게 오염원 배출 원인을 찾지 못한다면 분석 결과도 무용지물이다. 쓸데없으면 좋을 것 같던 걱정이 현실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기관장은 김 계장을 따라다니며, 우리 배는 절대 아니라고 여러 번 손사래를 쳤다. 계단을 오를수록 기관장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항해하던 배를 잡아두었으니 부담이 더 컸다. 기관실 조사를 마치고 갑판까지 올라왔다. 마음이 착잡했다. 바닷바람은 유난히 매서웠다. 괜한 의심을 품은 건 아닌지 기관장에게 미안했다. 쌀쌀한 날씨에 작업복에 기름 묻혀 가며 방제 작업을 한 직원들 볼 면목도 없었다. 날밤을 새가며 분석해 준 분석계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김 계장의 잘못은 아니지만 말이다. 김 계장은 다른 배에 올라간 조사팀장에게 전화했다. 혹시나 다른 팀에서 해결해 줄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었다. 그들은 김 계장 팀이 적발할 거라고 믿은 듯했다. 통화를 마칠 무렵에는 둘 다 목소리가 사그라졌다.


김 계장은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배 주변을 돌아봤다. 경비함정이 파도에 출렁이며,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김 계장은 수면에 떠오르는 ‘바다의 진실’을 보았다. 바다는 기름을 밖으로 내뱉고 있었다. 바닷속에서 한 방울씩 올라온 기름은 수면에서 짙은 무지갯빛 유막으로 넓게 퍼졌다. 이 배에서 나온 게 분명했다. 김 계장은 기관장을 불렀다. 그리고 손으로 유막이 올라오는 곳을 가리켰다. 그는 놀라며 당황했다. 기름이 나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나올 만한 곳도 아니었다. 조사팀과 선원들은 회의실에 모였다. 선박 도면을 살폈다. 그곳 주변에는 연료유 탱크와 기관실에서 바다로 냉각수와 해수를 배출하는 관이 여러 개 있었다.

선원들은 연료유 탱크에 조그만 구멍이 났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김 계장 생각은 달랐다. 연료유 탱크는 이중 선체여서 금이 갔다고 해도 기름이 바로 나올 수 없다. 분석 결과도 폐유였다. 김 계장은 상선을 탔을 때 기관장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2기사, 스팀관이 파공 나면 기름이 유입될 수도 있으니, 보일러 물은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네.” 김 계장은 기관장에게 보일러 물탱크로 가보자고 했다. 기관사들은 도구를 써서 물탱크 뚜껑을 힘겹게 열었다. 안에 있던 증기가 밖으로 솟구쳐 대기 중으로 사라졌다. 탱크 안에 끓는 물 위에 유막이 떠 있었다. 김 계장은 시료 채취 도구를 보일러 탱크 안으로 넣었다. 시료 채취 용품에 묻은 건 갈색 기름이었다.


기관장과 기관사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어리둥절했다. 선박에서 희박하게 일어나는 일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김 계장도 20년 넘게 해경에서 근무하면서 처음 겪는 사례였다. 조사해 보니 폐유 탱크를 통과하는 증기 파이프에 조그만 구멍이 나서 폐유가 스며들었고, 증기관을 통해 보일러 물탱크까지 유입된 거였다. 기관부 직원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보일러의 불순물을 제거하려고 주기적으로 하는 배출 작업을 하면서 기름이 바다로 유출된 거였다.


김 계장은 기관장에게 마지막으로 오염 사실을 확인시켰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찹찹하게 시인서를 적어 나갔다. 그럴 때면 김 계장의 기분도 좋지 않다. 그도 한 때는 기관장과 같은 기관부 선원이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 동질감을 느낀다. 바다라는 큰 울타리가 주는 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고의로 바다를 오염시킨 게 아니었다.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면, B호와 선원들은 이유도 모른 채 기름을 버려 해양을 오염시켰을 것이다. 배의 안전에도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도 있다. 계속 몰랐다면, 어느 항구에서는 문제가 드러났을 것이고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바다는 진실을 언젠가는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들어온 김 계장은 직원들과 조사 결과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무실은 고요했다. 그의 마음도 그랬다. 창밖으로 일요일의 저녁을 알리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잘하면 저녁은 가족들과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보고서를 결재하는데, 2기사 때 만났던 자상했던 기관장, B호의 선하게 생겼던 기관장 얼굴이 그려졌다. 이제 김 계장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B호가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항해하길 기원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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