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장님!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7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아침, 김 주무관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커튼이 드리워진 병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밤새 맞은 수액 때문에 정신이 몽롱했다. 내가 죽게 생겼는데, 다른 생명체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나는 힘없이 말했다. "그냥 놔둬요.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물이라도 좀 주라고 할 걸 그랬나!'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시골집에 심을 나무를 사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영암의 한 농장을 찾았다. 농장 비닐하우스에는 포트에 심긴 무화과 묘목이 연두색 잎을 무성하게 달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잘 자란 걸로 아홉 그루를 골라 종이 상자에 담아 주었다. 나는 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넸다. 주인아주머니는 서운했는지 잘 키워 보라며 두 그루를 덤으로 건넸다.
유난히 잎이 싱싱하고 줄기가 튼실한 묘목 하나를 사무실로 들고 왔다. 내 자리에서는 영암 산맥과 영산강 줄기, 목포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6층이고 남동향이라서 햇볕도 잘 들어 열 시만 되면 블라인드를 내려야 할 정도다. 이곳이라면 무화과나무가 잘 자랄 것 같았다. 생애 처음으로 반려 식물을 들이는 순간이었다
청사 재활용 처리장에 버려진 화분을 골라 묘목을 옮겨 심었다. 잡화점에서 배양토와 비료를 사서 화분에 고르게 뿌려 주었다. 출근하면 햇볕이 더 잘 들고 바람이 더 잘 통하는 데로 화분을 옮겼다. 무화과나무 잎은 하루하루 새록새록 돋았다. 새끼손가락만 하던 줄기도 조금씩 자라는 게 보였다. 한 달쯤 지나서는 초록색 잎이 여러 장 달렸다. 직원들은 무화과나무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열매가 열리면 꼭 자기를 달라며 농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깨는 으쓱댔고, 실웃음이 났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그래서 사무실 문은 대개 내가 연다. 그날도 그랬다. 무화과나무가 얼마나 자랐을까 기대하며 화분으로 다가갔다. 창으로는 여명이 서서히 비치고 있었다. 그곳에는 은은한 향이 잔잔히 퍼져 있었다. 밤새 무화과나무에서 내뿜었나 보다. 그 향은 따뜻한 지중해의 바다를 상상하게 했다. 포근하게 다가오는 싱그러운 향이 마음을 기분 좋고 차분하게 했다.
7월 말 경 주말에는 장맛비 예보가 있었다. 금요일 오후에는 무화과나무에 비를 흠뻑 줄 요량으로 화분을 옥상에 옮겨 두었다. 나는 다음 날,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5일간 입원했다. 예보대로 이틀간 비가 많이 내렸다. 장마가 끝나자, 뙤약볕이 내리쬐었다. 수요일에는 출근하자마자 옥상으로 갔다. 무화과나무는 김 주무관이 말한 대로였다. 잎은 바싹 말라 생기를 잃었다. 잎에 손을 대니 툭하고 땅에 떨어졌다. 두 손으로 화분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직원들은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식물을 잘 키우는 옆 계장님이 한마디 했다. "나무를 한곳에 두어야지. 걔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야."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식물에 필요한 건 완벽한 환경과 지나친 관심이 아니라 스스로 잘 적응할 수 있는 조건과 사랑이 담긴 배려라는 것을. 무화과나무보다는 내 관점에서 해 준 간섭이 오히려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무화과나무는 내 책상 뒤편에 자리했다. 그늘지기도 하고, 바람이 잘 안 통하기도 하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쯤 물을 흠뻑 주기만 했다. 며칠 지나자 앙상했던 줄기에서 연두색 싹이 돋아났다. 보름쯤 지나서는 예전의 건강했던 모습을 되찾았다. 8월 중순쯤 돼서는 물방울만 게 줄기에 맺혔다. 열매였다. 11월 말인 지금은 500원짜리 동전만 하게 커졌다.
무화과나무는 올 한 해 내게 많은 기쁨을 주었다. 반려 식물을 돌본다는 게 꽃이 피고, 열매가 여는 걸 기대하며 즐기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나무를 심고, 싹이 날 때부터 관심을 두고, 잘 자라지 못하면 안타까워하고, 열매가 열면 기뻐하면서 정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게 반려 식물을 키우는 재미 아닐까!
우리 아들은 내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 내신은 잘 나오는데, 모의고사 성적이 그렇지 못해 고민이 많다.겨울방학에는수도권에 있는 기숙학원에 보내볼까도 고민했다. 결정은 쉬웠다. 아들이 원하지 않으면, 굳이 그렇지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혼자서도 잘해 주었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는다. 무화과나무를 키우면서 얻은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