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저는 요구할 권리가 없어요

의무가 없는 관계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by 글산책

점심에 콩국수를 먹으러 식당에 갔다. 점심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딸아이가 먹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앞 테이블에 60대 아주머니들이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테이블 사이의 거리가 가까웠고, 그녀들의 목소리가 커서 듣고 싶지 않아도 잘 들렸다.


- 우리 며느리가 아이를 낳았는데 어머니가 용돈을 안 주시네. 평소에 잘 챙기시던 분이.


- 우리 어머니는 우리 며느리에게 금팔찌를 주시더라. 원래 나를 거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 나는 어머니 병원비 200만 원을 냈는데 동서가 드린 용돈 50만 원을 더 크게 생각하시더만. 그래서 유산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도 이 집안에 시집와서 고생했으니 내 몫도 달라고 했어. 나도 잘해왔으니까.


시댁 이야기는 결혼한 여자들의 대화에 자주 등장하는 화제이다. 시댁에 뭘 그렇게 기대하는 걸까? 어쩌면 의무를 강요당하니 대가를 바라는 건지도.


신혼 때 신랑은 형님(신랑 누나)들에게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 도배를 해달라, 태우러 와달라, 김치를 배달해달라 등. 신랑은 언제든지 오케이 하며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녔다. 따라다니긴 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한 남동생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부르는 것도, 그것이 사명인 양 달려가는 신랑도. '혼자 다녀와요.'라고 말도 못 하고, 주말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 싫었다.




어느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갔다. 오후에 형님 집에 도배를 해주러 가기로 했는데 출발이 늦은 것이다. 형님 집에 도착하니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고 타박을 했다. 순간 기분이 나빠 말에 뼈를 담아 한마디 했다.

- 제가 워낙 고급인력이라.




어찌 보면 가족끼리 우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을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가족이 되어 정을 쌓기도 전에 의무를 강요당하는 그 상황이 여간 고역스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별달리 그 상황을 피할 방법이나 용기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신랑만 보내도 되는 일들을 세트 마냥 꼭 함께 다녔다. 그렇게 딱 붙어 다니는 것이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고, 주말에 휴식이 필요해지자 신랑은 누나들의 부탁을 조금씩 거절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형님들도 잘 부탁하지 않으신다.


어머니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고 신앙심이 깊으시다. 그래서 큰며느리셨지만 제사를 일체 없애셨다. 교회도 다니지 않는 나는 어머니 덕분에 제사나 차례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는 명절만 되면 나오는 이혼율 증가와 같은 부정적인 기사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부당하고 불편한 상황 속에서 생기는 부정적 감정의 분화가 신랑의 원가족 앞에서 터지면 시댁 식구들이 모두 적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것이 이혼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얼마나 복 받은 여자인가? 뿐만 아니라 우리 어머니는 우리 집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으신다. 당연한 일이지만 감사하다.


어머니께 매달 생활비를 드리고 있다. 결혼 초, 빚이 넘쳐나던 때부터 지금까지.(단 물가가 상승해도 인상은 없다.) 이유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 내가 친정에 용돈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정에만 드릴 수 없었으므로 양가 부모님들께 드리기로 신랑과 약속했고, 그 사실을 시어머니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 남자 집하고, 여자 집을 똑같이 준다는 것은 말도 아니지.

라고 하셨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반감. 그러나 그것은 어머님 생각으로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그렇게 생각하신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넘어가고. 어머니께 생활비를 드리는 것은 아들이 도리를 다하는 것일 뿐 유산으로 돌려받을 생각은 없다. 며느리인 나에게는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아들인 신랑이 기대한다면? 그건 그의 문제다.


나는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강요당하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일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꼭 내가 겪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 아줌마들에게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진다.

"며느리는 가족이 아닙니다. 아들의 배우자일 뿐이에요. 그러니 의무를 강요하지 마세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기분 좋은 관계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나서 살갑게 굴지 않는다고 서운해 마세요. 별 수 있나요? 남인데."


특히 올케 언니에게는 시어머니인 우리 엄마도 가끔 올케 언니에게 서운하다며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실 때 나는 말한다.

- 엄마, 며느리는 남이에요. 기대하지 마세요.

엄마는 딸도 소용없다고 서운해하시지만 별 수 없다. 며느리일 때와 딸일 때 서로 다른 이중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는 법이다.


예전에 '시어머니의 보호자'라는 글을 브런치에 올렸다. 조회수가 4000회가 되었다고 알림이 뜨는 걸 보고 우리나라에서 '시월드'는 관심을 많이 받는 글감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시월드'가 여전히 여성들에게 부당함을 느끼게 하는 세계로 존재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의무가 없는 관계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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