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
그녀는 커리어우먼이다. 바쁜 걸음으로 자동차로 걸어가며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그녀와 통화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들. 엄마는 일에 쫓기면서도 아들의 간식을 챙기며 문단속을 철저히 하라고 말하지만 아들은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고야 마는데.
아들~~~
이 내용은 ‘보안업체’ 광고 중 일부이다. 처음 이 광고를 접했을 때, 엄마의 과장된 연기와 아들의 무심함에 자조 섞인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만약 엄마 연기자의 역할을 아빠로 바꿨다면 어땠을까? 단지 ‘저 아빠 좀 안됐네.’ 생각하고, 이렇게 와 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이루어지면서 어린 자녀 스스로 인터넷 접속 및 로그인 등의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과제가 있는 경우, 과제 지도는 물론, 결과물을 업로드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손이 필요했다. 그때마다 나오는 말이 ‘엄마 숙제’라는 말이었다. (‘아빠 숙제’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 되겠니?) 양육 전반에 걸쳐 엄마는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한다.
나는 교사지만 아들과 방학이 겹치지 않아 평소 출근하는 시간에 일어나 아들이 먹을 아침을 준비한다.
- 여보, 나는 방학인데 아들 아침 때문에 한 번도 늦잠을 못 자보네.
- 엄마니까.
매일 아침 그보다 2시간 먼저 일어나는 수고에 대해 당연하다고 말하는 그의 대답이 나는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 왜 나는 ‘엄마니까’라는 말이 폭력적으로 들리지?
딸이 거든다.
- 엄마, 그냥 안 차려주면 되잖아요. 오빠 스스로 차려 먹으면 되죠.
- 엄마 마음이 불편해서.
신랑이 말한다.
- 나는 안 불편해. 당신은 불편하다며. 당신이 엄마라서 그런 거잖아. 그래서 ‘엄마니까’라고 말한 거야.
그는 말을 참 잘한다. 들어보니 틀린 말도 아니어서 대꾸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속엔 숨겨진 의도가 있다.
아빠는 아들이 밥을 먹지 않아도 진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까? 자신이 하지 않으면 내가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다면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아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주는 일을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내가 차려주는 아침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빵을 따뜻하게 데우고, 마실 음료와 과일을 준비한다. 딸 말마따나 시간을 조금 들여 아들이 스스로 챙겨 먹고 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시간에 일어나 학교에 가는 아이를 봐야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걸까? 누구든 더 해주고 싶거나 해주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챙겨주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게 대부분 나(엄마)라는 것이 문제이다.
어느 날, 신랑과 나, 딸아이가 저녁 외식을 하고 들어오던 날, 딸은 이렇게 말했다.
- 엄마, 오빠 저녁 급식 잘 나온대요?
- 그렇겠지.
- 오빠는 좋겠다. 키가 크겠어.
- 왜?
-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거 아니에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움찔했다. 그것은 마치 ‘내 키가 크지 않은 건 엄마가 먹을 것을 대충 해주기 때문이에요.’로 들린 것이다. 딸아이가 짬뽕이 먹고 싶다고 해서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다행인 것은 옆에 있던 신랑도 함께 움찔했다는 것. 아침 식사는 몰라도 저녁 식사에 대해서는 그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학교에는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한 반에 서너 명 정도 있다. 요즘은 특히 아빠와 지내는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엄마든 아빠든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사람이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여자인 나조차도 ‘엄마가 아니라 왜 아빠가?’라는 생각을 하며 양육의 의무를 엄마에게 씌우고 싶어 하는 것을 발견할 때는 깜짝 놀라곤 한다.
국가공무원의 경우, 만 5세 이하의 자녀를 둔 남녀 모두 24개월 동안 하루 2시간씩 단축 근무를 할 수 있고, 부부 모두 사용이 가능하며 이를 육아시간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엄마, 아빠는 업무를 마치면 부부가 같이 육아시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연세가 있는 분들은 그 모습을 ‘별나다’라고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우리 때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그럼 나는 묻고 싶어 진다.
“그때 괜찮으셨어요?” 또는 “그래서 애 키우기 힘들지 않으셨어요?”하고.
나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하는 육아시간의 혜택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리기를 소망한다.
예전에 TV를 통해 본 가수 김윤아 씨의 말이 떠오른다.
육아는 엄마를 갈아 넣는 일
그 말에 적극 공감한다. 특히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는 젊은 엄마들은 더욱 그렇게 느낄 것이다. 젊은 아빠 중에서도 육아가 ‘아빠를 갈아 넣는 일’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오해하지 마시길. 단지 육아를 부부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것이니.
스스로 선택하여 엄마가 되지만 엄마라는 이름에는 여러 가지 의무가 점철되어 있다. 엄마가 되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 아빠가 되려는 자, 그 무게를 나눠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