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욕스러운가 곤혹스러운가

자궁경부암 검진

by 글산책

직장인 건강검진, 방학을 이용해 기본 검사만 할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내 몸속 어디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모르므로.

욕지기가 올라오는 위내시경의 고통, 가슴을 쥐어짜는 유방 촬영술의 고통(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한 고통은 잠시 미뤄두고, 가장 간단하고 빨리 끝낼 수 있는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으러 간다.


나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로, 둘 다 자연 분만을 했고, 1명의 남자 선생님이 두 아이의 출산을 도와주었지만 산부인과는 여전히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리하여 여의사를 검색하고, 내가 분만했던 곳이 아닌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그 여의사는 자세가 곧고, 화장도 깔끔하니 얼굴도 예뻤다. 그런데 눈빛과 말투가 ‘<나 권위 있는>이 아니고, <나 권위적인> 사람이야.’였다. 어떤 질문도 받지 않겠다는 고압적인 자세와 가르치는 말투(제가 가르치는 사람입니다만 항상 조심하고 있습죠.)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오늘은 내가 여기 왔다만 다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교사도 서비스직이다. 교육 서비스! 말과 행동으로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사도 서비스직 아닌가? 의료 서비스! 그들도 말과 의료 행위로 환자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검색해본다. 여전히 검색어는 ‘여의사 산부인과’이다. 새로 생긴 산부인과를 찾았다. ‘심봤다!’ 기분이다. 그게 뭐라고.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방문한 병원에서 마주친 의사는 수수한 생김새였다. 여기서 수수하다는 것은 화장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흰 가운에 가려 옷은 볼 수 없었으므로. 그리고 말투가 덤덤하니 권위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합격! 합격 아니면 어쩔 건데. 여기 아니면 갈 데는 있고? 그리고 그 의사에게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았다.


자궁경부암 검사를 여기서 설명하는 것이 맞나 싶지만 안될 건 또 뭔가? 자궁 경부란 ‘질에서부터 자궁으로 향하는 좁은 부분의 자궁’이라고 <다음>에 나와 있다. 여성의 질을 지나야 자궁을 만날 수 있고, 외형적으로 아랫배 부분에 해당하므로 자궁경부는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그러니 곤욕스럽게 다리를 벌리고 벌 받는 기분으로 앉아있어야 한다. 이래서 내가 여의사를 찾는 것. 인체의 신비? 경이로운 몸의 구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우리의 외형보다 내부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신비롭긴 하다만 그래서 각종 검사가 쉽지 않다는 것은 불행이다. 검사 자체가 주는 공포를 무시할 수 없다.


이번이 이 병원의 세 번째 방문이다. 병원이 없어지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매번 갈 때마다 사람이 많지 않다. 산부인과인데 ‘분만’을 하지 않으니 이곳에서는 생명 탄생의 신비는 없을 것이고, 임산부도 오지 않는다. 고로 나처럼 때가 되면 받아야 하는 자궁경부암 검진 대상자들이 대부분일 터.


그러고 보니 나만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겠다. 의사 선생님은 더 곤욕스럽지 않을까? 짧은 검진(약 3분, 문진표 작성이 더 오래 걸렸다.)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을 텐데 자궁경부암 검진만 하고 있다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여기서 곤욕과 곤혹의 뜻을 찾아볼까? 곤욕: 참기 힘든 심한 모욕 / 곤혹: 곤란한 일을 당해 어찌할 바를 모름 /

아니다. 곤욕스러운 것도, 곤혹스러운 것도 나다. 벌거벗고 앉아 내 안을 보여주는 자세로 인해 스스로 모욕감을 느끼는 것도 나고, 그 일이 곤란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이 드는 것도 나니까.


의사 선생님은 의료 행위를 하는 전문가로서 곤욕도, 곤혹도 없이 덤덤히 그 일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의료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 잠시 안됐다고 생각한 내가 불순하다.


그나저나 이 병원이 없어지지 않고 나의 자궁 건강을 오래도록 책임져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시어머니의 보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