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3자입니다
시어머니는 자녀가 일곱이다. 딸 다섯에, 아들 둘. 그 나이 대의 어른들이 그러하듯 아들이 최고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시어머니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시다가 버스가 갑자기 출발하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으셨다. 그날은 시댁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한 날이었다. 데면데면한 자녀의 차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시겠다고 하여 버스 정류장에 바래다 드리고 식당에 앉아 있었다.
얼마 안 되어 시어머니 번호가 찍힌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버스 운전기사였다. 지금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는 중이니 그쪽으로 오라고 했다.
병원에 가서 시어머니를 돌봐드렸다. mri를 찍으러 들어가셨을 때 복도에 혼자 앉아있으려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일곱 자녀를 낳으면 뭐하겠노.
‘마땅히 전화할 자녀가 없으셨나 보네. 며느리에게 전화하신 거 보면.’
며느리로서 씁쓸했던 게 아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그랬다.
어머니는 남자 친구가 있으시다. 평소에 자기감정을 숨기거나 꽁한 성격이 아니셨기 때문에(난 참 그런 성격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 사실을 거리낌 없이 말씀하셨고, 가부장적이고, 귀히 키운 아들(신랑)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딸들도 어머니와 살갑지 않다. 딸들을 귀히 키우지도 않으셨지만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의 쿨한 성격이 자식 입장에서는 엄마로서 가져야 할 정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모성애는 정해진 틀이 있는 걸까? 어른이 된 자녀들도 어머니에게 여전히 모성애를 강요한다. 자라면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어머니 나름대로 자녀를 사랑하고, 그 방식이 다른 것뿐일 텐데.
아들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마주 앉았다. 오늘은 2차 고사 마지막 날로 1교시 '기술 가정'을 본단다. 교과서에 사랑에 대해 나오는지 내 앞에서 격언을 읊조리고 있다.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 - A. 링컨 -
그렇게 막중한 책임을 나에게 덮어 씌우다니. 부담스러운데.
어머니가 연세가 있으셔서 자녀들이 일정량의 돈을 내고 그것으로 병원비를 충당한다. 쿨한 어머니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총무 형님에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다른 형님들이 총무 형님에게 돈을 지출하기 전에 상의하라고 말했다고 한다.(카톡으로. 다행히 나는 대화방에 없고, 신랑이 있다. 감사합니다.)
가까이 살면서 어머니 말씀을 들어드려야 하는 총무 형님 입장에서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많은 형제들과 상의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속상한 총무 형님이 전화로 넋두리처럼 말씀하신다.
- 원래 그 회비는 며느리가 관리해야 하는 거야.
이 집에 며느리는 나뿐이다.
어머님만큼 쿨한 나는
형님, 자식이 이렇게 많은데 제가 뭐라고 그것을 하겠어요. 그건 제 일이 아니에요. 저는 제3자입니다.
라고 말했다. 형님은 내 말에 당황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로.
그나저나 입원 수속을 한 내가 시어머니의 보호자로 올라가 있다. 내가 시어머니의 보호자가 맞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