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에 기반을 둔 평화
신혼 초 시댁에 갔다. 저녁을 먹고 신랑과 설거지를 한다. 신랑보다 2살 많은 형님이 다가온다.
- 너(신랑) 집에서 이렇게 살아?
- 형님, 집에서 밥은 제가 차리고, 신랑이 설거지를 하는데요.
- 집에서 하든지 말든지 모르겠고, 여기서는 하지 마.
뭐지? 이 부당한 기분? 여기는 신랑 네 집이고, 신랑과 나는 같은 직업군이며, 같이 먹은 밥인데.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결혼 제도가 얼마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알게 된 것은. 또한 결혼생활을 해보니 신랑이 얼마나 가부장적인 사람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러니 페미니즘에 저절로 관심을 생길 수밖에.
신랑은 결혼 전에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배가 나오거나 아침을 안차려 주면 이혼이야.
순진하게도 그런 말을 듣고도 결혼을 했고(콩깍지가 씌었지), 살면서 많은 일들에 대해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던 신랑은 이제 배가 나오기 시작했고, 내 배에는 식스 팩이 있다.(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그리고 요즘, 아침을 그가 스스로 해결한다.
당신이 예전에 그런 말을 했다고 하면 50을 바라보는 그는 그저 웃는다. 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딸은 아빠의 과거 발언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옆에 있는 아들은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얼굴인 것 같기도?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 관련 책은 아들과 함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들과 함께 읽은 책은 <저는 남자이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저>이다. 여자들도 간과할 수 있는 생활 속 성차별을 찾아내고, 꼬집는다. 저자 본인이 남자이기 때문에 받을 수 혜택까지도.
아들에게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아들은 대체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순간에 아들의 마음이 열려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엄마가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면 투명 방패를 들고 있는 느낌이 든다. 어느 날,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 여성이 우위에 있고, 더 배려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 아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우위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여성을 배려하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야. 그것도 불평등이니까. 페미니즘은 평등에 기반을 두고 있지.
내가 청소를 하거나 음식을 할 때 가끔 딸이 와서 말한다.
- 왜 엄마만 해?
- 아빠도 설거지를 하시잖아./청소하는 게 엄마한테는 운동이잖아.
나도 모르게 신랑을 대신해 변명하고 있다. 오랜 시간 이 문제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으니 더 이상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불평등에 기반을 둔 평화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딸은 불평등함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지도. 부모의 모습이 이론적인 설명보다 아이들에게 더 영향을 줄 것인데 나는 아직도 신랑을 설득하는 것이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