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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Nov 16. 2017

7호실

역설과 환상의 드라마

※ 영화의 장면이나 전개에 대한 암시가 있습니다


당당하게 '블랙코미디'임을 표명한 <7호실>은 기본적으로 역설의 미학이 진하게 풍긴다. 두 사람이 살기 위해 한 쪽은 문을 열어야 하고, 동시에 한 쪽은 문이 닫혀있게 해야 하는 전제 자체도 역설이다. 목숨을 건 사투에서 한 발짝 물러나자 바로 코미디가 되는 장면 역시 역설이다. 채플린의 그 유명한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란 역설을 몸소 실현한 <7호실>이다.     


개인적으로 <7호실>의 중요한 포인트는 현실 속에 파고든 환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부분은 다 현실적인데 영화에서 딱 세 번, 누가 봐도 연극적인 차림새를 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냥 지나치는 인물들이지만 이들이 등장하는 순간은 꼭 극의 핵심 터닝포인트, 혹은 그 직후다.      


생각해보면 <7호실>의 배경은 DVD방이다. 이름도 '할리우드 DVD'다. 한욱이 죽는 순간 등장하는 커플은 고스족이고, 두식이 시체 유기에 실패하고 7호실을 완전 봉인하면 형사 콜롬보 같은 형사가 나온다. 두식과 태정이 결탁했을 때 계약하러 온 이들은 전형적인 강남 졸부 스타일이다.      


누가 봐도 연극적인, 혹은 영화적인 인물들은 두식과 태정의 실제 삶을 파고들어 뒤흔든다. 그건 신호이기도 하고, 국면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이들이 왜 스크린 안의 비일상적인 순간에 두식과 태정을 마주하는가이다. 그들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적어도 그 현실에 실존하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한욱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떠올리자. 두식이 건물을 팔기 위해 계약 약속을 잡는 순간, 순식간에 감전사 당한다. 영화를 보는 우리야 ‘언젠가 사람이 죽겠거니’ 예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순식간에 일어난 부조리한 상황이다. 그 비논리의 순간을 맞이한 한욱은 어처구니없게도, 그냥 죽고 만다.     


<7호실>이 역설을 지적했던 것과 연관지어보면, 결국 삶은 논리적이지만은 않은, 비논리가 공존한다는 표현이다. 영화에서 우연이 겹치면서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그걸 '극적이다'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대다수의 사건과 같다. <7호실>의 7이 보통 행운을 의미하는데, 그 행운도 대개 예기치 못한 것을 이르는 것처럼 우리 삶도 결코 예기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인물들, 현실을 과장해서 비현실적인 그 인물들은 <7호실>이 제시하는 비논리적인 삶의 상징과도 같다. 단순히 코믹적인 요소를 넘어 (갑작스런 죽음처럼) 찾아오는 비논리적 요소를 제각기 인물의 형상을 빌려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7호실>은 이렇게 할 말이 많은 영화다. 그래서 영화가 좋냐고? 그건 아니다. 이건 흥미로운 요소에 집중했을 때고, 대부분은 아쉬운 구석이 더 많다. 극도로 비현실적 순간과 현실적인 캐릭터를 엮었던 영화가 끝내 다소 얌전한 결말로 나아간 것이 첫째고, 둘 사이의 쫀쫀한 긴장과 관계 역전이 영화 전체의 비중에서 얼마 되지 않는 게 두 번째다.     


블랙코미디를 지나 <7호실>이 전하는 위로의 방식은 그럭저럭 효과적이다. 하지만 짜릿했던 블랙 코미디 이후 연민으로 찬 위로가 밍숭맹숭한 뒷맛이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7호실>은 할 말이 많은 영화지만, 아주 인상적인 영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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