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ADHD 진단 후 알게 된 '미루기'의 진짜 이유

30대, 수많은 '왜?'에 대한 의외의 귀결을 찾아서

by 수플레네

성인ADHD 진단 후 알게 된 '미루기'의 진짜 이유

게으름이 아니었던, 성인ADHD 진단 후 알게 된 '미루기'의 진짜 이유

이 글은 오랫동안 게으름이라 자책했던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된, 긴 여정의 첫걸음입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조금 특이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멍하니 딴생각하거나, 흥미 없는 일에는 집중하지 못해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수업 시간엔 눈은 칠판을 향하고 있었지만, 정작 머릿속은 온통 엉뚱한 상상으로 가득했다. 남들 눈이 있을 때는 집중하는 척했지만, 사실 딴생각 중이거나 아예 엎드려 자는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 '매일 자냐', '잠이 많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것 같다.




과제를 미루다 잊어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는데, 벼락치기로 제출해도 결과는 다른 친구들과 비슷하거나 '꽤 괜찮다'는 평가를 받곤 했다. 그래서 내 과제방식이나 학업 능력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습관적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았고, 때문에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여겼다. 당장 큰일이 나지 않을 정도의 일이라면 미루다가 결국 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는데, 나 자신도 왜 그러는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보니 나 자신을 좀 더 성찰하고 관찰하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고, 본인에 대한 기록을 어딘가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 그 시도들은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내 인생의 전환점,
2022년



12월 말, 2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1년간 푹 쉬며 이모티콘 제작이나 디자인 프리랜서 활동 같은 창작에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때, 기억 저편에 오랫동안 묻혀있던 '성인 ADHD'에 대한 의문이 다시금 떠올랐다. 2022년 TV에서 그 단어를 처음 접한 이후 한동안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혹시나 하는 막연한 의심이었던지라 그동안 덮어두었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퇴사 후 마주한 '막연한 자유' 속에서, 하고 싶은 건 많으면서도 계획적이지 못하고 실행력 떨어지는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다시 떠오른 의문을 좀처럼 놓아버릴 수 없었다.


처음 그 단어를 접했을 때 느꼈던 막연한 의심과 불안감, 그리고 이제는 정말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 미루어왔던 병원 방문을 드디어 결심하게 되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2023년 1월 3일, 생애 처음으로 정신과 문을 두드렸다. ADHD 검사 병원을 찾는 일부터 마냥 쉽지 않았고, 여러 번의 전화 끝에 겨우 가능한 곳을 찾아 설문지와 상담, 뇌파 검사를 진행했다.


생소한 뇌파 용어들 속에서 내가 들은 건 '전두엽 활성화 저하 소견'과 '성인 ADHD가 맞습니다'라는 진단이었다. 설마 아니기를 바랐는데... 당황스럽고 허탈한 마음으로 아토목세틴 처방약을 들고 병원을 나섰다.




새로운 시작,
또 다른 일상



정신과 진료와 약 처방을 받던 그날, 나는 반려견과 함께 첫 자취를 시작했다. 독립의 자유와 반려견과의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로 가득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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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그림자, 끝나지 않는 돌봄


그러나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노환이던 반려견의 치매와 대소변 실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나의 하루는 기저귀 교체와 청소로 시작과 끝을 맺어야 했고, 새로운 창작 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는 할 일을 자주 미루는 게으른 사람이었지만, 반려견의 안전과 위생을 위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내 인생 통틀어서 가장 열심히 쓸고 닦았던 시기였다.



답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의 무게


특히, 반려견의 잦은 발작과 상태가 신경 쓰여 외출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홈캠까지 설치해 외출 중에도 수시로 들여다봤다. 발작이 잦아든 이후엔 수익 활동 재개를 위해 구직도 생각해봤지만 막막하기만 했다.


당장 출근하기에는 불안해 낮 시간 동안 반려견을 맡아줄 곳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치매가 있는 노견을 받아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고, 그나마 가능했던 병원은 부담스러운 비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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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당장은 약의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이 거대한 현실 앞에서 내가 가진 한계는 ADHD 진단 이후 더욱 명확해졌다.


쉼 속에서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했고, 하고 싶은 건 많지만 계획적이지 못하고 실행력이 떨어지는 스스로를 너무 잘 알기에 더욱 그랬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나는 INTP 성격유형의 웹디자이너다.

타고난 호기심으로 늘 새로운 생각과 분석을 즐기지만,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데 에너지를 쓰느라 정작 실행 단계에서는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가령 '나무 종류'를 찾아야 하는데, 어느새 '나무열매'로 새더니, 뜬금없이 '사과'에 꽂혀 결국 '사과 품종'까지 파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건가 싶어 정신이 아찔해지곤 했다.


과거 직장에선 긴장감 덕분에 집중력을 유지했지만, 막연한 자유 속에선 이탈이 훨씬 심해졌다. 그러나 이탈만큼이나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늘 어딘가 잘못되거나 더 나은 개선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끊임없는 염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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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염려는 '균형 잡힌 완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내게 끊임없이 부족함을 느끼게 했고, 결국 '완성!'을 선언하는 것을 유독 지체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실무에서는 결국 마무리를 지어야 했기에 찜찜함을 안고 작업을 마무리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혼재된 모습들 속에는, 한번 몰입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극단적인 면모 또한 존재했다. 어쩌면 이런 강한 몰입이, 방대한 정보를 탐색하고 연결하며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나의 창의적 과정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구성하는 이런 중요한 요소들 속에서, 성인 ADHD 또한 이러한 나의 특성과 발현 방식에 깊이 관여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브런치 시리즈는 내가 '성인 ADHD'라는 이름표를 달고, 오랫동안 기록하고 싶었던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탐험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혼자만의 고민이라 여겼던 일상 속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나와 비슷한 많은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알아차림'이 곧 '극복'의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내가 걸어온 여정과 나름대로의 방법들을 솔직하게 나누고자 한다.




이 '우리들'의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공감과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다름'이 단순히 불편한 것이 아니라, '나'를 '나답게' 구성하는 하나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 긴 여정은 앞으로의 더 넓은 깨달음을 향한 과정입니다. 이 길 위에서 마주친 여러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각자만의 또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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