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암산 앞에서 바보가 된다
"이것도 못 해?"
타인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간단한 암산 앞에서 3~5초의 딜레이를 겪으며 당황했다.
5,000원을 내고 3,800원짜리 커피를 살 때도, 그 짧은 딜레이 때문에 순간적으로 무능력자가 된 기분이었다. 방금 들은 전화번호는 휴대폰을 찾는 몇 초 사이에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이런 순간마다 스스로를 '덤벙대는 사람'이라 여겼다. 하지만 문제는 성격이 아니었다. 나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바로 ADHD, 난산증 유사 특성, 그리고 '뾰족한 범재'라는 인지적 특성이 만들었던 결과였다.
나의 어려움은 작업 기억의 약점에서 시작됐다. 작업 기억은 정보를 잠시 붙잡아두고 동시에 조작하는 능력이다. 암산할 때 숫자를 임시로 기억하거나, 여러 단계의 지시를 순서대로 기억하는 일에 작업 기억은 필수다.
ADHD는 주의력 결핍을 일으켜 정보를 작업 기억에 효율적으로 입력하고 유지하는 것을 방해했다. 여기에 난산증의 특징까지 겹쳤다.
난산증은 '수 개념이나 긱본 산술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는 신경발달적 차이'를 말한다.
나는 공식적인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느끼는 증상과 경향이 여기에 매우 가까웠으며, 특히 수치 정보 앞에서 저장 용량에 한계를 느꼈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정보 처리는 숫자에만 머물지 않았다.
얼굴을 여러 번 보고도 기억이 흐릿했고, 설사 떠올린다 해도 이름은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나의 뇌는 짧은 정보를 붙잡아 두는 데 서툴렀고, 그것을 장기기억으로 옮기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나만의 정보 관리 시스템이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반복적으로 사용하거나 생존에 필수적인 정보-가족들의 주민등록번호나 휴대폰 번호, 자주 쓰는 계좌번호-는 장기 기억에 비교적 잘 저장되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자리가 늘 부족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단순히 단기기억 능력이 떨어진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다르게 해석할 여지를 발견했다.
만약 내가 천재였다면, ADHD로 인해 주변의 수많은 정보를 끊임없이 수용하더라도 그것을 처리할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 생각해 보았을 때, 나는 천재가 아닌 범재였다. 저장 용량도, 처리 속도도 평범했던 것이다.
그런 범재의 뇌에 ADHD 특성이 더해지면서, 평소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과 민감하게 포착되는 주변 자극들이 임시 저장 공간을 늘 포화 상태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과학적으로 이 점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경험하는 '뾰족한 범재'의 현실이었다. 보통 사람과 같은 용량에, 보통 사람보다 많은 정보가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뇌.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던, 결과는 분명했다. 계좌번호도, 주소도, 사람의 얼굴도 명확히 저장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뇌는 이 불균형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찾았다.
나는 수학의 개념과 논리적 패턴을 이해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실제 수학 성적은 낮았는데, 복잡한 공식 암기나 계산 절차를 반복하는 데에 서툴렀던 것이다. 작업 기억의 약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뺄셈과 같은 산술적 사실을 자동적으로 인출(기억)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인출이 지연될 때, 논리적인 전략으로 문제를 변환했다.
신기하게도, 복잡한 암산이나 곱셈과 달리 뺄셈이나 나눗셈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나는 보통 두 가지 전략을 사용했다.
5,000-3,800
= (5,000-3,000)-800
= (5,000-4,000)+200
큰 수를 단계적으로 쪼개어 뺄셈한다.
가까운 기준값을 잡고 마지막에 덧셈으로 보정한다.
결국 나는 자동화된 기억 대신, 추론 엔진을 가동했다. 3-5초의 딜레이는 바보가 된 시간이 아니라 우회 경로를 설계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나의 인지적 특성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나의 어려움은 뇌가 정보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범재이지만, 인지 자원이 특정한 쪽으로 뾰족하게 특화된 사람일 뿐이었다. 이 불균형을 인정한 후, 나의 삶의 태도는 약점 보완에서 강점 극대화로 바뀌었다.
중요한 정보는 머리 대신 휴대폰 메모나 종이에 적었다. 머리를 믿는 대신 시스템을 믿었다.
암산은 가능하지만 딜레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3~5초 동안 당황하는 대신 추론 엔진을 가동했다. 때로는 계산기 앱이나 카드 결제를 사용하여 딜레이 자체를 회피했다. 이는 게으름이 아닌 효율성을 위한 현명한 전략이었다.
단기 기억이 덜 필요한 복잡한 패턴 분석이나 전략 수립 등, 나의 강점인 추론 능력이 발휘되는 일에 몰입했다.
이 불균형을 인지하고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나는 이러한 뾰족한 부분을 마음껏 휘두르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능력치가 뾰족한 범재'가 아닐까?
본 글에 언급된 '난산증 유사 특성'과 '안면인식장애 유사 특성'은 공식적인 의학적 진단이 아닌, 당사자로서 경험한 증상에 대한 개인적 해석임을 밝힙니다.
이 글은 ADHD 당사자가 자신의 인지적 특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담은 개인의 성찰 기록입니다.
오늘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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