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참는 게 아니야. 실제로 화나지 않았을 뿐이야.
나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걸 단순히 소심함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감정이 먼저 치밀어 오르고, 그 감정이 가라앉은 뒤에야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반대다. 감정보다 판단이 먼저 움직이고, 그 다음에야 감정이 따라온다.
또한 좀처럼 화도 잘 내지 않는데, 아주 드물게 예상을 벗어난 상황에서 감정보다 먼저 불이 붙는 순간도 있다. 그래도 결국엔, 감정보다 생각이 한발 앞선다.
"왜 저 사람이 그런 말을 했을까?"
감정이 끓어오르기도 전에, 이렇게 상황을 해석하려는 습관이 앞선다.
예컨대, 쉐이크에서 고무 조각이 나왔던 그날처럼.
"화를 너무 참는 것도 좋지 않아."
주변 사람들은 종종 내게 이렇게 말하지만, 그 표현은 내게 잘 맞지 않는다.
나는 화를 참는 게 아니라, 애초에 화가 분출될 만큼 달아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람인 이상 짜증은 난다. 다만 그 강도가 낮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나는 화를 누르기보다 생각을 먼저 거치는 사람이다. 겉으론 담담해도, 머릿속 분석은 계속 돌아간다.
그 과정이 끝나면 잔열 같은 짜증은 사라지기도 하고, 반대로 늦게 부풀어 올라 오래 머무르기도 한다.
사건은 끝났는데, 며칠이 지나 문득 속이 거칠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비로소 "아, 그때 그 말이 불편했구나" 하고 느낀다.
예전의 나는 지금보다 감정을 더 빠르게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불편함이 얼굴과 말투로 곧잘 드러났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표출은 짧아지고 생각이 먼저 작동하는 쪽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미성숙함과 ADHD 특성이 겹치던 시절에는 행동이 생각보다 앞서기도 했지만,
성장하면서 분석적 사고가 자리 잡고 그 특성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느려지는 법을 배웠다.
내가 화를 느끼는 순간은 대개 감정보다 맥락과 상대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음식이 입맛에 안 맞거나 서비스가 아쉬우면 '다음에 안 와야겠다' 하고 넘긴다. 그건 단순히 운이 나빴던 경험이다.
하지만 불친절하거나, 먹으면 안 될 이물질이 들어간 문제는 다르다. 그건 '맛'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 신뢰의 파손이기 때문이다.
집으로 오며 내내 냉장고 속 디저트를 떠올렸다.
막상 열어보니 없었다. 동생이 먹어버린 것이다.
순간 험한 말이 튀어나올 만큼 화가 치밀었다.
머리가 뜨거워졌지만, 이성이 그 감정을 꽉 붙잡았다.
'이건 화낼 일은 아니야'
라는 생각이 거의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편의점에 가서 초콜릿을 사 와 상실감을 먼저 달랬다.
아마 잔뜩 기대했던 걸 빼앗긴 경험이 거의 없어서,
그 낯선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왔던 걸지도 모른다.
감정은 뜨거웠지만, 판단이 더 빨랐다.
그래서 내 화는 겉으로 새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이해하려 여러 틀을 시험해 왔다.
어릴 때는 혈액형이나 별자리 같은 가벼운 프레임을 흥미로 보았고, 성인이 되어서는 MBTI가 INTP 성향을 비교적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성인 ADHD 진단은 '나는 무언가 남들과 다르다'는 오래된 감각의 근원을 밝혀 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감정보다 판단이 앞서는 나의 방식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나의 리듬이었다.
20대 초반, 친구와 카페에서 쿠앤크 쉐이크를 마시던 중 단단한 게 씹혔다. 뱉어보니 검은색 고무 조각이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졌고, 하마터면 삼켰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직원은 바로 사과했고, 새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쿠앤크인 줄 알았는데 고무 조각이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단단한 표정과 평소보다 단호한 톤으로.
새로 받은 쉐이크는 맛있었고, 최종 계산에서도 금액을 빼주었다.
그때는 그게 '합리적인 해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 일은 내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사건은 종료됐지만, 미묘한 감정이 한 박자 늦게 찾아왔다.
며칠 뒤 밥을 먹다 말고, 지하철을 타고 가다 말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을 텐데, 내 말투가 너무 단호하지 않았을까?"
"굳이 새 음료를 받았어야 했을까?"
"그래도 쉐이크 값은 지불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날의 내 표정과 말투, 그리고 사과받은 방식에 대해 나는 여전히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지 곱씹는다.
그 기억은 현재까지도 내 안에서 한 장면처럼 거듭 재생된다.
나는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에 약하다.
상대가 정말 미안해한다는 감각이 전해지는 순간, 화라는 불씨는 빠르게 꺼진다. 그건 '관계를 다시 잇자'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한때는 내가 너무 무덤덤해서 혹시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내 감정이 희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기에 그런 불안이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나는 싸이코패스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화를 억지로 참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항상 생각을 거쳐 감정에 도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반응은 느리지만, 그 느림 덕분에 내 감정을 더 정확히 바라볼 시간도 얻는다.
사건은 종료돼도 감정은 종종 한 박자 늦게 온다.
나는 그 느림을 받아들이고, 다음 장면에서는 조금 더 나은 나를 고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