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의 삶

23년 6월 26일의 기록 / 생산성이여 안녕

by 수플예

꿈에 그리던 비생산성


난 폐암에 걸렸어도 여전히 운이 좋은 사람이다.

신랑은 돈을 잘 벌고 내가 삼십 대인데 부모님은 아직 팔팔한 현역이다.

가끔 친구들에게 이 폐암은 산재라고 떠벌릴 정도로(근거 없음)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내 직장마저

병가나 휴직이 자유로운 곳이다.


그래서 난 폐암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아주 빠르게 사무실 일을 마무리 짓고

공주 같은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생활은 정말 누구라도 꿈에 그릴 생활이다.


나는 지금 월요일 13시 30분에

친정집 마당 한구석에 정원이 제일 잘 보이고 차양이 쳐져있는 명당자리에 접이식 의자를 펼쳐놓고

잠옷 차림으로 그 위에 반쯤 누워서

엉덩이와 발치에 우리 집 강아지 둘을 끼고서

하등의 쓸모없는 이런 글이나 쓰고 앉아 있다.

지금 내 가장 큰 고민은

내 앞에 나무 의자 하나가 시야를 조금 가리는데

저걸 치우러 일어나기 귀찮다는 것이다.

내가 꿈꾸던 삶이다.


그리고 이 생활의 핵심은

내가 만 서른에 이렇게 비생산적인 인간이어도

스스로 전혀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죽기 살기'와 '치열하게'


그동안 난 늘 이런 삶을 꿈꿨으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공짜로 이런 삶이 주어져도

절대 누리며 살지 못할 종류의 인간이었다.


난 늘 자기 검열에 시달렸다.

매사에 발전적이고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압박감

그걸 부채질하는 난 좀 똑똑하고 야무지다는 자존심

근데 그 능력을 다 펼치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좌절감


이 감정들은 늘 상대적인 거라

신랑이 내게 아무리 잘하고 있다고,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해도

난 내가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왜 자랑스러워야만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자랑스럽지 않다는 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다는 뜻인데

막상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어서

늘 괴로웠다.

그냥 되는대로 막 열심히 살았고

그러다가 내 지옥 같은 직업도 갖게 됐고 블로그도 시작했다.


'죽기 살기'와 '치열하게'

이건 우리 아빠 인생을 정의하는 여덟 글자다.

아빠는 저 여덟 글자를 가지고 인생을 <국제시장> 영화처럼 살았다.

다만 좀 훨씬 더 성공적으로.

어려서부터 아빠는 심지어 '놀 때도 치열하게 생산적으로 놀라'고 했다.

난 아빠의 저 여덟 글자를 치열하게 거부했지만

스무 살 때 영화에 빠진 수플예는 방학 30일 동안 영화를 110편쯤 봤고

지금 만 서른 살 수플예는 젤다의 전설을 할 때도 심즈를 할 때도 다음날 대회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해서

신랑을 경악하게 한다.


아빠의 치열하게 사는 방식을 물려받았으면

그 비상한 머리도 물려받았어야 했는데

애석하게도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난 평범한 회사원 주제에 쓰잘데없이 치열하게 살면서

속으로는 늘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하며

대책 없이 속만 끓이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15개월의 삶


내가 암이라는 충격에서 어느 정도 헤어 나오자

죄책감 없는 자유로움이 밀려왔다.

더는 아무도, 심지어 나 자신도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오직 건강할 것 외에는.

사는 게 이렇게 심플할 수 있구나.


이런 생활은 정말 처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난 이렇게 살았던 적이 있다 93년도에.

한 살 무렵에.


난 지금 아픈 데가 하나도 없는데도 (암이라고 아픈 건 아니다.)

다들 내 삼시 세 끼를 영양 있게 마련하는데 열성이고

지난밤 잠자리가 평안했는지 걱정하며

암 중에서도 마침 폐암이라 요리를 못하게 하고

먼지 날리는 데 있지 말라고 청소도 못하게 한다.

그렇다고 내가 해야 하는 공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건 15개월 아기의 삶이다.

'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없는 삶.

백수도 그냥 백수가 아니다 이건.

늘 눈치가 보이는 취준생도 아니고

학교가 방학해도 학원에는 가야 하는 학생도 아니고

하루 종일 아기 보느라 바쁜 애엄마도 아니다.

지금 난 당당한 순수백수다.

순 수 백 수


요즘 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

그리고 다행히 난 15개월짜리처럼

가만 내버려두어도 하고 싶은 게 원체 많은 사람이다.


전에도 몸이 안 좋아 3주 정도 일을 잠깐 쉰 적이 있다.

근데 그땐 전혀 이런 기분이 안 났다.

당시에는 곧 다시 사무실에 복귀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 지옥 같은 직업을 계속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

쉬는 한 달을 내내 다른 직업이나 자격증을 알아보면서 보냈다.


하지만 신랑에게 미안하고 고맙게도

이제 그놈의 돈벌이 고민을 영영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등에 날개가 돋친 것 같다.

생산성이여 안녕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암이라고 주변에 알렸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