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제주도를 가봤다
‘벌써 이만큼이나….’
초록색 물병에 물이 줄었다. 인식하는 순간에도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 불안해질 무렵. 이제는 육지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 가득한 바다. 그 한가운데 떠 있는 커다란 여객선 안에서 나는 콘센트를 찾고 있었다.
제주도로 가는 배에 모든 것을 싣고 갔다. 가진 재산의 전부인 몸과 입사하고 할부로 산 차를 배에 태워 여수항에서 출발했다. 그렇게 난 직장인이 아닌 여행자로 집을 나왔다. 모든 것을 가지고 억지로라도 문밖을 나가는 게 여행의 이유였고, 그렇기에 스스로 과감해야 했다. 새롭게 달라진 나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과장님, 저 그만두고 싶습니다.”
몇 달 전, 갑작스러운 내 고백에 아침부터 과장님과 면담이 있었다. 복지 업무 담당자로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을 해오던 부하직원이 어려운 말을 꺼내자. 그분은 긴 설득을 하셨고, 나는 주변에 마음의 병을 얻었다는 소문을 남기며 급하게 휴직했다. 역시나 남겨진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자신도 없던 나는 소리 없이 책상을 정리했고, 그 후로 좀처럼 방문을 나서지 못했다.
“넌 전생에 사관(史官)이었을 거야.”
자신감이 정점을 찍었던 시기에 함께한 스마트폰은 내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 습관을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이야기하는 사람이 건넨 말이다. 그런 버릇으로 나와 내 주변을 사진 찍고, 통화하고, 수많은 볼거리를 보았다. 그렇게 과거의 사진은 깃털처럼 쌓여서 몇천 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이번에는 나를 위해서 제주도로 향했다. 새로운 내 모습을 기록하려고 말이다.
제주도 항구에서 커다란 여객선 엔진은 드디어 진동 소리가 멈췄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이다. 해안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지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서 주차가 가능한 공간에 차를 놓고,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봤다. 복잡한 내 마음과는 다른 너무나 맑은 풍경 속에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적당한 현무암 바위에 궁둥이를 붙이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었다. 5월의 햇살로 달구어진 바위는 뜨겁지만, 바람만큼은 약간 차갑게 촉촉했다. 그래도 신기하게 땀은 나지만 목구멍에서는 뜨거운 갈증이 말랐다. 그럼 바로 뒤에 있는 독특한 장식으로 손님들을 유혹하는 어느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침대보다 편한 소파에서 커피잔의 온기를 느끼며 민트색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런 호사도 잠시. 스마트폰을 보니, 저녁까지 버티지 못할 만큼 배터리가 바닥을 보였다. 불과 1년 전에 배터리 교체를 했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몇만 원의 지출은 아깝지 않게 생각했던 나였다. 그만큼 전원이 꺼진 스마트폰은 상상할 수 없었다.
조금은 화도 났고, 손에 익은 물건이 점차 수명이 다해간다는 것이 슬펐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사진 속 내 모습과 지인들의 모습을 모두 저장한 물건이다. 그리고 지금 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을 실행하는 존재. 할 것도 많은데, 좀 더 버텨주면 좋을 것을 왜 이렇듯 속절없이 줄어드는지 야속했다.
다시금 불안해진 나는 카페의 구석진 곳에서 충전을 시작했다. 쓸데없이 블루 레모네이드 한 잔을 더 마시면서도 꾸역꾸역 자리를 지키는 것은 온전히 스마트폰 때문이었다. 구형인 스마트폰은 가끔 걸려오는 기기변경 권유 전화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하지만, 배터리 문제만 아니면 딱히 불편한 것도 없었다.
창밖 제주 애월읍의 어느 카페에서 바라본 바다색과 충전 중에 마시는 블루 레모네이드 색이 묘하게 같아 보였다. 다 마시고 바닷가에 가서 한 잔 담아 오면, 어쩐지 그 맛이 날 듯한 청량감. 내 마음도 스마트폰도 금방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바다가 아닌 그 바다를 보기 위해서 온 다른 관광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가 다른 이유로 온 사람들이다. 단체 관광을 온 어느 소속의 사람, 해외로 나가지 못해서 제주로 온 신혼부부, 혼자 사색을 즐기기 위해서 걷고 있는 사람 등. 이유는 다양해도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 온 것임은 틀림없다. 아마 모두 파란 물병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아닐지.
역시나 아름다운 바다가 사진을 찍게 했다. 그리고 추억을 담고, 즐거움을 느낄수록 배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내 나는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에 와서 잠들기 전에 충전하고, 결심했다. 이번에 나를 변화시키고, 그 계기로 이 스마트폰을 바꿔버리자.
그렇게 며칠 동안의 아슬아슬한 배터리 걱정은 집에 와서야 끝났다. 결과적으로 여행은 나를 바꾸지 못했다. 어느 정도의 기분 전환으로 점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마음의 문은 조금 열었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그냥 문제가 있는 배터리만 바꾸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서비스 센터로 향했다. 모든 것은 내 시간을 따라오지 못하는 배터리가 문제니까.
“배터리가 너무 빨리 줄어서요. 배터리를 교체하고 싶은데요.”
그 말에 수리 기사는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가며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객님. 배터리가 좀 지나긴 했지만, 딱히 바꾼다 해도 큰 변화는 없을 거 같은데요?”
‘무슨 소리인가. 난 배터리가 없어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사실은 별 이상이 없다니. 그럼 내가 느낀 부족함은 기분 탓이었던가.’
‘아뿔싸’ 문제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내 습관과 욕심이었다. 게다가 내 조바심으로 스마트폰을 탓하고 있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담백한 결론이었다. 허무하지만 의문도 없었다. 오히려 마음은 더 속이 후련했다. 결국은 내 탓이었던 것뿐이니까.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