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로 6
일에 집중을 하다 보면 식사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아마도 오히려 당면한 일이 있는 순간에 식사 시간이 있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것은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한 끼 식사를 거르고 뭔가를 마무리 지울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아마도 가장 최악은 식사가 생각나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무력함이 더 좌절된 상황이 아닐지.
그래도 한 주를 마치고 성대한 육회비빔밥을 먹고는 잠을 이루려는 순간에 몰려오는 배고픔을 참다가 결국은 라면 물을 올리고 말았다. 전기밥솥에 두 숟가락 남은 겉은 딱딱해진 밥 덩어리와 함께 국밥처럼 ‘너구리’라면을 먹고 누웠다.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모처럼 진짜 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원룸 같은 방에서 누워있었다. 제주를 갈 수 있는 어느 항구 도시에서 바다를 보다가 쉬기 위해서 어느 집에 작은 별채 방을 빌려서 누웠다. 내가 혼자 있어도 모르는 그런 곳.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서 책과 유튜브만 보는 나에게 나무귀신이 말을 걸었다. 아마도 일반 영화였다면 방에 나무 풀 줄기가 문을 막고 있고, 못 보던 물건이 마구 생기는 것은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반갑게 드문드문 즐길 거리는 주는 산타클로스 같은 나무귀신의 이벤트에 감동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혼자 있기에 절대로 심심하지 않게 책도 넉넉했고, 귀가 심심하지 않게 최신형 휴대전화로 이어폰까지 있었다. 그리고 가방도 좋아하는 걸 아는지? 내가 좋아할 만한 것만 골라 놓은 좁은 그 방에서 설령 나가지 않더라도 난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열어 놓은 창문에서 쓰레기 수거 차량 소음에 잠을 깨고는 꿈임을 알았다. 보통은 악몽 같은 이야기 구조인데, 편안함을 느꼈다는 것은 나도 참 별난 사람임은 틀림없다.
간혹 꾸는 그러한 꿈에서 나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은 부끄럽고, 무섭다. 아마도 그래서 가장 아프고 즐거운 것만 골라서 보여주는 신비한 마법도 있지만, 이처럼 상세하게 느낌이 기억나는 경우가 적은 것은 너무 자극적이라서 일부러 삭제한 것은 아닐지. 그조차도 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고민과 생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에 나름 자기 방어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꿈은 다시 잠들고 빠지고 싶었다.
혹시 몰라서 다시 눕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꿈은 꾸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하기에 근처에 있는 다이어리에 내 꿈을 살짝 적어 봤다. 아마도 이러한 꿈을 자주 꾸는 것은 앞으로 내 직장 생활이나 일상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꿈속에서 깨끗하게 지워진 상태로 나를 다음날 산뜻하게 시작한다면 그걸로 충분했을 테지만, 아쉽지만 주말을 맞이하는 아침에 나는 그렇지 못했다.
정말 대충은 기분 좋은 꿈임에 틀림없으나, 앞으로는 기억하지 못하는 꿈으로 몸과 마음이 개운한 하루를 맞이하는 잠을 청하고 싶다. 그래서 먹는 수면제이고, 식사도 거르고 집중했던 일이니까. 그걸 바라는 것도 그다지 무리는 아닐 건데. 잠시 이런 개꿈 같은 이야기를 털어 보면서 내일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