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로 3

커피 도둑놈

by 이춘노

"카누 누가 가지고 가나? "


저 멀리서 회계 담당자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카누 잔량에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일을 하다가 ‘카누’라는 이야기에 속으로 뜨끔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 ‘카누 도둑’이 바로 나였다.


면사무소에 발령을 받고, 아마 처음에 사다 놓은 카누를 거의 다 마신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의 물을 마시듯이 카누를 마시고 있는 습관 때문이다. 신규 시절에는 아침에 출근해서 한 잔 마시고, 직원들이 출근하면 다시 한 잔 마셨다. 그리고 오전에 뭔가 공문에 씨름하고 있다 보면 종이컵에 커피를 습관처럼 마셨다.

게다가 민원인이 오면 다시 한 잔 마시고, 점심을 먹고 나면 후식으로 커피를 마셨다. 또 오후에 공문을 처리하다가 마셨고, 야근하며 마시다 보면 적게는 7잔은 마셨던 것 같다. 그것도 달달한 커피 믹스를 말이다.

신규 시절에는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종이컵을 보면 마시는 양을 어느 정도 가늠했는데, 환경 업무를 보면서 머그잔으로 바꾸고는 정확하게 커피를 마시는 숫자를 세는 것도 포기했다. 아마도 어딜 가든 회계 담당자에게는 내심 공공의 적이 아니었을지?


그렇게 자수를 하고는 인심 좋은 회계는 카누를 평소보다 더 사다 놓아주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신 굽신거리며 다시금 커피를 마셨다. 어찌 보면 나는 커피 중독 일지 모르겠다. 건강을 위해서 되도록 뜨거운 물을 마시려고 하지만, 너무 밋밋하다. 그래도 연하게 마시는 아메리카노나 카누가 입맛에 맞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습관에 종속적이다. 어떻게 시작했을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 몸에 밴 습관이 나이가 들어가는 와중에도 머리는 인식하지만, 이미 손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말을 내뱉고 있다. 민원인에게는 평소 안 쓰던 억양으로 친절하게 상대를 하면서도 가까운 직원들에게는 존칭과 반말이 섞여 나오는 나쁜 버릇은 아직도 고치고 있지 못하다. 그만큼 한 번 몸에 기억된 습관은 쉽지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그건 우울증도 그렇지 않을지? 내담자를 만나서 상담을 하다 보면 항상 화가 나 있다. 아니면 항상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는 말을 듣는다. 물론 주변에 쉽게 말을 하지 않지만, 그건 진지하게 나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듯 쉽게 고쳐지지 않는 내 습관에 복직하면서 고쳐보고자 보름 동안 큰 노력을 하고 있다.

일단 웃고 있다. 조용하게 일을 하고 일그러진 표정을 최대한 긍정적인 언어를 쓰려고 노력 중이다. 웃기지 않지만, 아재답게 농담도 툭툭 던지고 있다.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는 넌지시 이야기했지만, 이건 모두 연기다. 다행히 혼자 사는 나는 아침부터 야근하는 순간까지는 모든 에너지를 일에만 투자하고 집에 돌아오면 쓰러지듯 잠을 잤다. 물론 이것도 약물에 기대서 잠을 자는 수준이다. 아니면 아마 저도 새벽에 수없이 깨어나야 하는 고통이 이어질 것이다.

어렵게 복직을 하면서 나름 목표한 것은 아주 간단했다. 다시는 무책임하게 떠나지 말자. 그리고 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어차피 평생 일할 것이 아니라면 그 시간에 나를 위한 인생의 대안을 찾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말이다. 그런 면에서는 아직 나는 커피 도둑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만큼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으니까.




덧붙이는 말

생각보다 웃는 게 참 힘들다. 글을 쓰면서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늘은 참 몸과 마음이 고통스러워서 써 놓은 글에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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