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 시점으로 본 산내면민의 날

3년 전 추억을 떠올린다

by 이춘노
2020년 1월까지 근무했던 산내면사무소

가을 하늘이 푸르다.

아마도 계절은 그대로였지만, 코로나 시작부터 나는 하늘보다는 사람들의 마스크를 보는 것이 익숙했다. 언제 걸릴지 모르는 역병에 대처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사람을 피하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가는 방법이었으니까. 애써 하늘을 피하고, 방 안에서 혼자 지냈다.


그것이 2020년 1월부터니까. 벌써 3년이 되었다. 그러다가 저번 주에 우리 면의 면민의 날 행사를 마치고, 다음 주 스케줄을 확인하다가 눈에 익은 곳이 보였다. 바로 '산내면민의 날' 행사였다. 익숙한 이유는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일을 했고, 마지막 면민의 날 행사와 단풍축제를 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유독 기억에 남았다. 정말로 행사가 많아서 고생이 많았던 근무지였다. 게다가 거리도 멀어서 가장 먼 출퇴근 시간을 기록했고, 지리산에 가까워서 자연재해에도 취약했다.


아마도 3년 전, 산내면에서 나는 매주 토요일을 반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행사와 태풍과 그리고 행사. 그 와중에 어머니 암수술과 간병까지. 몸이 서너 개라도 모자랐을 시기에 나는 면사무소 직원으로 면민의 날을 참석했다. 행사라고 생각하고 참석했던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그냥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곳에 가고 싶었다. 오전에는 '사회복지 박람회' 행사 참석도 해야 했지만, 코로나 시국에 못 봤던 다정한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다정하다고 하면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산내면에 애착이 많은 편이었다. 우울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서 항상 한숨만 쉬던 나를 직원들과 주민들이 품어준 정감이 있는 곳이라고 할까? 나에게 산내면은 그런 친정 같은 곳이다.


일단,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고속도로를 타야 했다. 되도록 빨리 가려면, 별 수 없다. 그냥 남원 IC를 타고, 지리산 IC로 빠져서 인월을 거쳐, 구불구불한 산내 특유의 도로를 10분은 더 달려야 했다. 그런 산속에 숨었다 드러나는 곳에 면사무소와 초등학교와 마트와 은행과 주민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미 점심을 지난 시간에 사람과 주차된 차들로 면소재지는 시끌했다.


그냥 자유롭게 관찰자 시점으로 온 산내면은 의외로 젊은 사람이 많은 활기찬 곳이다. 노인분들도 많지만,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젊은 사람이 많은 산골짜기 면이다. 귀농귀촌 인구 유입도 그렇고, 대체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라서 젊은 분들이 행사 진행 요원으로 애쓰고 있었다. 각 마을에서 그러한 구성을 보면, 이방인인 내가 슬쩍 끼어서 있더라도 그다지 튀지 않을 정도니까.


대뜸 이장님과 아는 주민들에게 인사를 했다. 마스크 때문인지 몰라 보다가, 덩치와 스타일을 보고는 수 초 후에는 전에 일한 면사무소 직원임을 알아보시고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다. 덕분에 메뚜기 마냥 마을 부스에서 음료수와 음식을 얻어먹고는 같이 일했던 주민과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특이한 경우이긴 하다. 전에 일했던 직원이 찾아오는 경우는 말이다. 그래도 이때가 아니면 찾기 어려운 일이라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그분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사회복지 공무원? 아니면 환경 담당자? 그것도 아니면 통통했던 여러 남자 직원 중 한 명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난 배를 채우고는 인근을 살짝 걸었다. 난 사실 이곳에서 1년 넘게 살았으니까. 나에게도 산내면은 생활 터전이기도 했다.

남원 산내면 유성식당

초등학교를 나와서 코너를 돌아가면, 바로 보이는 산내면 '유성식당'. 이곳은 내 기억으로 술을 제일 많이 먹었던 맛집이었다. 고기도 좋았지만, 각각의 메뉴들이 맛이 좋아서 식사를 하기 위해서 자주 갔던 식당이었다. 너무 익숙해서 몰랐지만, 한 번은 친구가 놀러 와서 자취방에 짐을 풀고 여기서 김치찌개에 두루치기를 시켜서 안주 삼아 먹었다. 역시나 지금도 감탄을 하면서 종종 이야기를 하는 친구 말을 빌려서도 맛은 보장되는 집이다. 아마 차가 없었다면 두루치기나 두툼한 흑돼지가 들어간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 하고 갔을 테지만, 아쉽게 이번엔 지나쳤다.

남원 산내면 맛집 유성식당
산내에서 살던 곳

그래도 당시에 그렇게 저녁에 술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살던 곳 바로 옆에 맛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퇴근이 멀어서 미혼인 나는 방을 얻어서 살았다. 시골이라도 꽤나 좋은 공간에서 자취를 하면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혼자 라면도 먹었지만, 주민들과 고기에 술도 마시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산책으로 손전등을 들고는 하천 주변을 걸었다. 저 멀리 지리산에서부터 흐르는 물과 인월에서 오는 물이 만나서 흐르는 '람천'이 내는 소리는 여름에는 무섭게 요란했고, 겨울에는 잔잔해서 그때마다 분위기가 달랐다. 계절마다 나뭇잎 색이 바뀌는 것처럼, 물소리도, 거리도, 집 주변 풍경도 그림 같이 아름다웠다.

살던 집의 옆집

몰랐지만, 내가 살던 주변에는 한옥이 이뻤고, 이곳은 제법 유명한 숙소였다. 날씨가 좋은 날에 다시 보니 새삼 분위기가 좋았다. 꽃도 좋았고, 덩굴도 분위기를 살렸고, 흐르는 물과 바로 보이는 산세가 잠시나마 마음에 여유를 주는 것 같았다. 이것이 산내가 주는 매력이 아닐지.

다리를 건너서 입석마을에서 내가 살던 공간을 바라보았다. 또 새삼 다른 풍경에 가을에 핀 코스모스와 사색에 빠질 때쯤. 인월에 갔다가 돌아오시는 이장님께 불려서 다시금 행사장으로 갔다.

코스모스와 함께 있는 이정표는 다음 마을을 알려주었다. 아마 저 마을을 지나고, 더 달리면 지리산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계곡도 있고, 와운마을에 천년송도 볼 수 있다. 산내면은 볼 것도 많지만, 오늘은 사람을 보려고 왔다. 마지막으로 알아봐 주신 이장님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며 2019년의 면민의 날을 생각했다. 내가 산내면민의 날에 찾아갔던 마지막 이유.


행사 때도 나는 항상 우울했다. 사는 게 참 힘들 때. 내가 알던 지인이 죽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들었던 비보에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주민과 안타까운 죽음에 만감이 교차하던 그때를 떠올렸다. 지인도 산내를 다녀갔었다. 아마 주민들도 알고 있겠지. 아니, 기억하고 있을까?


잊고 살던 면민의 날이 찾아오듯. 나도 산내도 잊지 않았다고, 그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시 내가 조금 따뜻한 말을 해줬으면 어땠을까? 남일 같지 않던 그날이 떠 올라서 떠났던 면사무소 면민의 날을 찾아왔다. 어쩌면 나도 그 위로와 관심이 필요해서 불현듯 찾아왔던 것 같다. 그래도 난 제법 기억해주시는 게 감사했다.

그때도 참. 하늘이 푸르른 게 놀기는 딱 좋은 날씨였는데. 그곳 하늘도 지금과 같은지. 묻고 싶지만 알릴 길이 없어서 글을 남겨본다.


"그곳 하늘도 산내에서 본 하늘처럼 푸르고 아름답니?"


대답은 역시 없지만.

천국이 더없이 좋기를 바라는 미안한 기도를 했다.


아무래도 다음에는 유성식당에서 두루치기에 소주도 한 잔 하며 좀 취해야겠다.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다. 산내의 별빛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