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발치

사람에게 필요 없는 것은 없을까?

by 이춘노

백과사전에는 사람은 사랑니를 포함하여 모두 32개의 치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랑니는 치아 중에서 가장 나중에 나오는 어금니로 20대 초반쯤에 나오는 이유로 사랑니라고 부른다는데, 군대 제대를 하고 몇 년에 걸쳐서 매복된 사랑니를 발치하다가 왼쪽 아래 사랑니를 계속 품고 있었다. 매복된 사랑니를 뽑기 위해서는 극심한 고통을 동반하는 것과 더불어서 이를 뽑아주는 병원이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장소와 시간문제로 입사 이후에는 치과를 가면서도 항상 의사에게 지적을 받는 부분이었다.

사랑할 나이가 지나고 이제 사랑을 나눠줄 나이가 될 지금도 사랑니를 뽑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여유가 없었지만, 턱관절과 어금니 사이에 공간도 마찬가지로 틈이 없어지고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사랑니와 어금니를 같이 뽑아야 하는 경우도 예상해야 했다. 그렇게까지 안 되기 위해서 휴가철에 사랑니를 뽑을까 싶었지만, 계속 미루고 있다가 휴직이라는 긴 시간을 담보로 여름철을 지나 가을에 나의 중요한 할 일로 남겨뒀다.

코로나로 병원 예약과 진료가 어려운 시기라서 중소도시에서는 없는 대학병원급 병원 예약이 어려웠다. 차선책으로 전주에서 사랑니 발치로 유명한 몇 개의 개인병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개인병원은 대학병원보다는 쉬운 예약과 진료 시간 단축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보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살 속에 묵혀 두었던 사랑니의 기간보다는 짧지만, 어쩐지 뽑는 기간이 그 정도 되면 사람은 뒤로 미루고 싶어 진다. 그동안 고생했던 기간은 잊고, 앞으로 생길 고통의 몇 주가 더 고민되는 사람의 심리 속에서 뽑고서 참고 아물기를 기다려야 했다.


가끔 내가 힘들 때 많이 들었던 격언 중에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듣고 있으면, 그만한 충고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짜증이 났다. 아픈 것을 어찌하겠는가? 내가 힘든 것을 참는 것이 전부라면 나는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가끔은 신이라도 믿으면 이 시간이 좀 무뎌질까 싶어서 기도도 했지만, 마음도 고통도 잔잔해지지 않았다.

다행히 사랑니 발치는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마취가 잘 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의사 실력이 좋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고통도 없었다. 다만 마취하고 가는 내내 거즈를 물고서 운전을 해야 했다. 또 피가 나오는 것을 삼켜가며 식사 대신 물을 마셨다. 식사하기에는 사랑니가 빠져나간 구멍이 너무 컸고, 아팠다.

2주 동안은 통증과 부은 얼굴로 일상생활을 해갔다. 그리고 사랑을 더는 하지 않도록 몸에서 떼어 내고는 마음 편하게 주변에 이야기했다. 아직도 사랑니를 품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겪은 고통을 상상하면서 부러워했다. 그리고 나는 마음 편하게 나의 발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예방적 선택. 그것이 나의 핑계이지만, 나의 불안도 사랑니와 함께 뽑아버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휴직 기간에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것을 하고 나니 역시나 마음은 가벼웠다. 어찌 보면 고통은 필연적인 삶의 과정 아닐지? 사랑니를 뽑고 새삼 아픔을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도 휴직했기에 알게 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사랑니도 필요 없는 것도 아니었고, 고통도 그런 것 아니었을지.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덧붙이는 말.

브런치 북으로 올린 글을 쓰다가 남겨둔 글이다. 2020년 휴직을 하고서 묵혀둔 사랑니를 뽑고, 시원한 마음에 쓴 글이다. 역시나 컴퓨터에 묵혀둔 글을 다시 뽑아 보았다. 역시 필요없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모든 것에서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광한루, 달빛을 비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