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아재가 노량진에 간 이유는
춘아재는 지금 사육신 공원에 있다. 바로 앞에 황금빛 63 빌딩이 있고, 주황으로 칠한 테이블에 헤이즐럿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해서 마시고 있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그래도 이런 찬바람은 차분한 강바람이라서 맞을만하다.
사실 차갑다고 해도 뭐 어쩌겠는가? 이 정도의 뷰를 보면서 글 쓰는 작업실이라면 감수해야겠지. 아마도 세상 넓은 작업실을 마련하려고 난 밤 기차를 타고 서울을 왔나 보다.
물론 혼자이기에 찜질방에서 대충 잠을 청했다. 그리고 사우나도 하고, 세신사에게 묵은 때도 밀었다. 또 이곳에 별미인 찜질방 라면을 먹었다. 원래 계획은 좀 이른 시간에 나가서 종로를 가려고 마음먹었는데, 어쩌다 보니 식욕이 계획을 이겼다.
아마 망설이는 나에게 앞선 여성이 라면과 음료와 간식을 주문한 대범함이 용기를 준 걸까? 모르는 그분의 먹방을 멀리서 직관하고는 바로 라면을 깨끗하게 비우고는 청소가 끝난 어느 동굴에서 잠이 들었다. 그야말로 겨울잠을 자는 곰이었다.
이렇듯 별 계획도 없이 밤기차를 타고 서울을 온 것은 춘아재가 생각이 많아서였다. 그리고 이미 3월 달력은 토요일이 업무 일정으로 아무 곳도 갈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꽃놀이를 간다는 그리고 화이트데이라고 선물을 주고받는 오늘이 그나마 여유가 있는 하루였다.
내 글을 자주 접하는 독자는 알겠지만, 난 종종 노량진에 온다. 정확히는 찜질방과 노량진 수산시장 때문이지만, 온전히 노량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오로지 생각을 정리하고, 결심을 할 때뿐이다. 일종의 성지 순례 같은 곳이랄까?
개인적으로 복잡한 일과 생각을 비울 필요도 있었고, 외로움에 익숙한 노량진을 찾은 것이다. 그래도 이곳에 고통도 있었지만, 추억도 조각조각 흩뿌려 있으니까.
점심 무렵에야 땀을 빼듯이 생각을 다 쏟아 내고는 내가 살던 고시원 근처 성당에서 기도를 했다. 물론 과거에는 합격을 바라는 간절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은 죄를 고하는 중년의 허전한 기도지만, 진심을 다했다. 그렇게 소고기국밥 한 그릇을 먹고는 문뜩 한강을 보고 싶었다.
최근에도 추운 겨울 낮에 방문했던 한강이다. 육교를 건너면서 까치가 마중을 나오고, 하늘은 맑았다. 익숙한 듯하면서 새롭고, 새롭지만 친근한 사육신 공원에서 나는 정말 수많은 다짐도 하고, 약속을 했었다.
가는 길과 육교와 그 근처의 건물들. 최근까지도 행복도 했지만, 차츰 무뎌진 감정들이 차단된 감정처럼 복잡하게 다가온다.
누군가 세상 사는 것이 충고를 했었다. 궁금한 게 많아도 답이 없고, 알기 싫은 소식만 들리면 자기 자신을 비워보라고.
솔직히 어릴 땐 무슨 헛소리인가 했는데, 생각을 다 쏟아내고 한강을 보니 부질없는 일에 애타고 기다리고 마음 썼던 나 자신이 작아 보였다.
'그러게 버릴 건 버리자.'
그렇게 나쁜 감정은 흘러 보내고, 좋은 추억만 마음에 담는다. 아마도 그런 마음 정화가 필요해서 내가 노량진에 온 것이겠지?
이런 저런 마음을 적으려 이 큰 작업실에서 슬쩍 글을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