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프로필을 바꾸고 아차 싶었다.

감정의 표현 방법은 어디까지 해야 할까?

by 이춘노

요즘 감정 기복이 심한 이작가는 말수가 적어졌다. 타인에게 기분 나쁜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그조차도 시작은 내 행동이나 말이 문제였을 것이다. 거기에 그 사람들의 상황과 태도가 더해졌을 뿐. 의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는 내가 한 행동이다. 그래서 이작가는 매일 밤에 짤막한 다이어리를 쓰면서도 하루를 정리하면서 미움보다는 반성이라는 것을 억지로라도 껴 넣어 보았다.


'뭐, 다 이유가 있었겠지.'


물론 성인군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이런 말을 하는 나의 태도에서 붉어지고, 찡그려진 얼굴이나 엉성한 꼰대스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종의 고해성사 같이 죄를 덜어내는 의식 같은 것이다. 그렇게 지난 몇 달을 그리 감정 기복이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이번 주는 몸이 고장 나버렸다.


실제로 강행군이었다. 지난주에 했던 산수유 축제가 특히나 타격이 심했던 것 같다. 토요일까지 행사를 하고, 일요일 아침에 나가서 밀린 일을 좀 하다 보니, 잠깐 잠들었다가 심한 두통과 오한이 왔다. 그래도 공부할 때 그럭저럭 진통제와 일을 하면서 버티는 재주가 있어서 오기를 부렸더니, 화요일부터는 안 되겠다 싶어서 반차를 내고는 병원 투어를 돌고, 끙끙거리면서 누워 있었다.


간신히 수요일 다 늦은 저녁에 배민을 주문해서 몇 숟가락 떠먹고는 남긴 음식은 아직도 냉장고에 있다. 그래서 그랬을까? 목요일 출근 후에는 평소에 예민함이 서너 배는 늘어나 있었다. 살짝만 옷깃이 스쳐도 나를 해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공포가 몸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의 무력함과 미래의 불확성과 감당하기 어려운 우울함이 몰려왔다. 그래서 프사를 몇 자 적었다. '참 오래 참았다.'

뭐 관종이라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작가 지망생이긴 하지만, 프사의 상태 변화를 기록하는 것은 일종의 약속이었다. 2017년쯤인가? 아무런 말도 없이 우울한 표정만 짓는 나에게 지인이 한마디 했다.


"그리 얼굴을 해도 결국엔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요. 표현할 때는 확 드러내요. 이를테면 프사에 뭐라도 써요."


지금 생각해 보면, 급작스럽게 마음 변화가 생기기 전에 그걸 보고 누군가 잡아 줄지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누군가라도 말을 걸어 줄 것이고, 못된 생각은 잡아 줄 거라는 말.

나름 살면서 도움을 제법 받았고,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을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겠지만, 어제는 옆자리 후배 직원이 말하는 걸 듣고 아차 싶었다.


프사를 보고, 내내 걱정을 하다가 차를 타고 가면서 무슨 일이 있느냐며 묻는 띠 동갑도 훨씬 넘는 어린 친구에게 괜한 격려를 받았다. 그러면서 내가 보인 부끄러운 말과 행동도 환기 되면서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햇다.


뭐 어차피 마음 정리할 시간은 필요하고, 해야할 것들이 떠오르지만, 우선 할 것은 다시금 프사를 조용히 지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