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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다멜리 Jun 09. 2021

난 휘트니 휴스턴에게 빚을 졌다

다이애나비는 사진으로 기억되지만 휘트니 휴스톤은 내 가슴 속에 남았다

2012년 2월 11일 휘트니 휴스턴이 생을 마감했을 때 목이 아플 정도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자다가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서 이불을 적시기도 했는데 내가 터뜨렸던 슬픔의 정체는 바로 '미안함' 이었다. 어릴 적 나는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 받고 힘을 내고 희망을 품었는데,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한없이 미안했고 삶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휘트니 휴스턴으로부터 나는 받기만 할 뿐 한 번도 내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그녀가 초라하게 죽음으로 치닫는 그 긴 시간 동안 안타까워할 뿐 그녀를 붙잡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시들어가는 인기와 관중의 야유만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죽어갔을 그녀를 생각하니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복받쳐 올랐다. 


영혼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목소리

어릴 적 나는 영화 '보디가드'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영화가 흥행한 뒤 한참 뒤인 중학교 때 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우연히 '보디가드 OST' 카세트 테잎을 듣게 되면서 처음 휘트니 휴스턴을 알게 됐다. 오히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머라이어 캐리를 좋아했고 휘트니 휴스턴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으며 라디오에서 걸핏하면 흘러 나오는 'I'll always love you'를 들으며 너무 지겹고 식상하다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날 도서관 시청각실에서 무슨 음악을 들어볼까 하고 테잎을 고르다가 눈에 익은 보디가드 OST를 고르게 되고, 휘트니 휴스턴의 'I have nothing'을 듣게 되면서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그 테잎을 빌려다가 헤드폰을 끼고 앉아 몇 시간이고 휘트니 휴스턴의 'I have nothing', 'Run to you' 등 을 들었다. 노래를 다 듣고 나면 내가 마치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가수처럼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음절 하나하나에 가슴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진짜 내가 노래하듯이 심취해서 온 힘을 다해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나는 공부 잘 하는 모범생이었지만 실제로는 'I have nothing'이라는 가사말처럼 가진 게 하나도 없다 느꼈는데 휘트니 휴스턴이 'I have nothing, nothing, nothing'이라고 소리치며 노래하는 부분에서 일종의 후련함을 느꼈던 것 같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영혼이 치유 받듯, 음색이 아주 포근하면서도 흠 하나 없이 실키(silky)한데, 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질 때에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올림픽 경기에라도 출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벅찬 감동을 줬다. 


어느 가수의 노래가 그렇듯 원곡만큼 그 노래를 제대로 소화하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지만 휘트니 휴스턴은 정말 대체 불가능한 '영혼의 목소리'와 울림통을 가졌다. 소리가 파워풀하면서도 너무 깔끔한데 게다가 울림이 커서 그 누구도 흉내낼 수가 없다. 휘트니 휴스턴을 회고하는 다큐멘터리 필름 '휘트니'에서 그녀의 엄마가 휘트니 휴스턴에게 노래는 영혼에 닿는 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나의 영혼은 결국 그녀에게 사로잡혀 버렸던 것이다. 단순히 고막에 닿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노래는 내 온 몸을 관통하여 내 영혼 깊이 자리 잡았다. 


육성으로 기억되는 사람

사람의 육성은 가슴 속 한 켠에 물웅덩이를 만든다. 작은 돌 하나에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물웅덩이다. 


예를 들어, 다이애나비가 남긴 무수한 사진들과 스타일은 아직도 우리에게 고상하고 우아한 표본의 이미지를 전해준다. 그녀의 사진을 보며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다. 


나는 휘트니 휴스턴이 그녀 영혼의 울림통에서부터 끌어올린 소리를 들으며 10대 시절을 보냈다.  감성을 키워갔고, 영혼을 치유 받았다. 나는 그녀를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음악을 통해 그녀의 영혼과 교감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그녀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날 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온몸으로 그녀 음악에 귀기울이던 10대 시절로 되돌아간다. 


나는 비록 미비한 존재여서 그녀에게 아무 힘이 되지 못했지만 이제 그녀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녀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보낼 것이다. 당신은 여전히 내 안에 크고 위대한 목소리라고, 내 가슴 속 당신의 목소리는 전혀 시들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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