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도 이전의 침묵
바야흐로 인간의 마음이 무너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자발적 죽음’은 더 이상 특별한 비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상의 가장자리에서, 누구에게나 조용히 닿을 수 있는 선택지처럼 놓여 있었다. 내면의 고통 앞에서 한순간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사람은 어느덧 죽음이라는 배에 올라타 있었다. 그것은 소리도 없이 다가와, 망설임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사람을 먼 곳으로 실어 나르곤 했다.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었다. 오히려 감정, 덧없고도 변덕스러운 마음의 파편이 자신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분노, 공허, 슬픔 같은 것들이 한순간의 파도처럼 밀려와 삶을 뒤집어버릴 수 있다는 진실은, 그 어떤 재난보다 잔혹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 지키기 위해 몸속에 장치를 들였다. 신경과학 기술로 빚어진 주사와 약물은 감정을 미리 다듬고, 극단으로 치닫기 전 잘라내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마다 그것을 복용하며, 무너지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 대가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음’과 ‘느끼고 있음’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잃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