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찔레꽃은 울지 않는다
“찔레꽃은 하얗게 피어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도 향기를 낸다.”
— 김용택, 「찔레꽃」에서
찔레꽃은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먼저 핀다. 담장 옆, 길 가장자리,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 먼저 자기 몫의 계절을 살아낸다. 희득이는 그런 아이였다.
기쁠 희(喜), 얻을 득(得).
그 이름에는 아들을 얻어 기쁨을 보라는 소망과, 아들이 아닌 딸이 태어난 것에 대한 실망이 함께 배어 있었다. 6년 후, 남동생 재근이가 태어났고, 희득이는 더욱 또렷하게 밀려났다.
희득이는 아무런 돌봄 없이 혼자 자라났다. 어머니는 늘 마음이 먼저 바빴다. 후처로 들어온 집에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몸보다 앞서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희득이는 자주 안기지 못했다. 아버지 또한 항상 밖에 존재했다. 살아내는 일이 전쟁보다 길던 시절, 그는 하루를 버티고 돌아오면 말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아버지의 전처 딸인 언니들, 순임과 정임도 각자의 방식으로 조용했다. 순임은 두 손을 모으고 말 대신 기도를 올렸으며, 주어진 것에 대해 순응했다. 정임은 재봉틀 앞에 앉아 말 대신 바늘을 움직였고, 바늘이 천을 지나갈 때마다 마음속 불덩이를 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득이는 울지 않았다. 그릇의 가장자리에 누군가 먼저 숟가락을 넣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 밥을 먹고, 남은 자리에 앉아 버티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공부를 했다.
희득이는 공부를 잘했다. 타고난 머리가 좋은 데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힘이 있었다. 언니들도 똑똑했지만, 희득이는 그보다 더 집요하게 매달렸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희득이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대학에 보내달라고 말이다. 교대에 가면 과외를 해서 틈틈이 생활비를 보태고, 동생 공부 가르치는 일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오랜 시간을 공들여 설득했다.
아버지는 거절하기를 망설였다. 희득이는 시집 보내기엔 모자란 아이였다. 몸이 약하고, 집안일도 서툴렀다. 바느질도, 요리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고삐 안 잡히는 망아지 같은 성질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희득이는 조금이라도 자신을 건드리는 이가 있으면,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서 되갚아주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희득이가 집 안이 아닌, 밖에서 살 아이라 판단한 아버지는 결국 희득이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꽃보다 가시가 먼저 닿았던 찔레꽃이 처음으로 환하게 피었다.
한편 희득이가 아버지에게 대학에 다니는 것을 허락받은 후, 정임은 재봉틀 앞에서 잠깐 발을 멈추는 순간이 잦았다. 만약 단 한 번이라도 동생처럼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하고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