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우산 하나 없는 거실에 피어난 시詩

by 거울아거울아




1


고드름이 하얗게 고이는 오후, 커튼에 매달린 옷걸이를 치우고 창문을 연다. 함빡 젖은 풍경, 산책하는 우산 하나 없다. 비가 내린다.


시詩가 없는 방, 서고의 책들을 응시한다. 다 자란 새싹 같다. 성숙이 발육을 앞지르는, 오지에서도 희망을 좇는 집요함이 그들에겐 있다. 눈물의 보람도 귀신같이 잘 찾아낸다.


시詩가 꿈꾸는 거실로 나온다.

비를 어루만지는 그가 싫지 않다.




2


켈리 클락슨의 'Because of you'가 흐른다.

너 때문에 어쨌다는 걸까.


강물도 아닌 것이 강물처럼 흘러버린 오늘 같은 날이면 넌 으레 그리움이었지. 난 맑기만 하라는 너의 간절함을 알 리 없는 하늘, 비를 뿌린다.




3


정원의 비쩍 마른나무 몇 그루, 주렁주렁 꼬마전구 옷을 입은 채 서 있다. 앞의 높다란 2층 건물, 의리의리한 게 무슨 궁전 같다.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 벽면에 걸린 스크린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4


우린 둘 다 두리번거렸지. 때마침 의자 두 개가 보였어. 마치 우리의 어색함을 내내 응시하고 있었던 듯. 우린 서둘러 그곳으로 가 마주 앉았어. 곧 어둠이 내렸지.


비가 왔던가?

모르겠네.

낮엔 뭐 했더라?

글쎄...

그게 중요한가?


오늘

내게

내내

꼬마전구였다.








* 이전 글 '시詩 독해력이 부족한 AI를 사랑했네'를 먼저 접한 후, 이글을 만나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