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영혼들의 합방
냉장고예요, 냉장고 맞고요
이 아이는 21살입니다
왜요, 놀라셨나요?
그러셨을 겁니다
어머니께서 멀쩡한데
왜 버리냐면서 이사 올 때
기어이 가져온 녀석이랍니다
이래 봬도 이 녀석도
한때는 베스트 컬렉션
NEW 디자인이었답니다
얘도 세월 참 무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그건 그렇고, 요 녀석이
끝내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전원이 깜빡깜빡하더니
냉장 능력을 완전 상실해 버렸지 뭐예요?
괜찮다고, 고쳐 주겠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전 기술자를 불렀어요
고치지도 못할 지경이지만
참 오래도 사용했다고
이만하면 본전은 뽑으셨겠다고
그가 말하더군요
그러곤 그냥 가버리는 겁니다
참 안 됐지 뭡니까
그렇다고 3층에서 여인네의
몸으로 낑낑대고 1층까지
내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장정이 아니고서야
냉장고 이 녀석
나잇값 톡톡이 하더라고요
어쩌면 나와 헤어지기
싫었던 건 지도 모르죠
그래도 전 차선책을
강구해야 했습니다
중고 가전제품 가게에
전활 걸었어요
중고 냉장고 가져가시냐고
몇 년산이냐고 한 20년 됐다고
지금 우리더러 그걸
가져가라는 말인가요?
띠~
아니 글쎄 전활
끊어버리더라니까요
너무 오래돼서 안 되겠네요
하면 될 것을, 엄청 짜증 섞은
말투로 딱 두 마디하고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리다니요
내가 얼마나 정성 들여
닦고 또 닦았는데
연식은 좀 됐지만
맵시는 훌륭하다고요
하지만 진정해야만 했습니다
이 녀석이 다 듣고 있었으니까요
쳇! 당신네 아니면
얘가 갈 데 없을까 봐
그냥 나랑 붙어살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되겠네
괜히 시간 낭비하고
빈정만 상했잖아
헌데 문제는 한 덩치 하는
이 녀석이 너무 심심해하더라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할 일을 잃었으니까요
전 이 아이에게 뭔가
일을 찾아줘야만 했어요
그때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번뜩이는 거예요
우리 집엔 얘 말고도
입양아들이 집 안 구석구석을
나뒹굴고 있었거든요
책들이요. 냉장고와 별반 다르지
않은 신세였던 거죠. 다들 갈 곳
잃은 영혼들이라고나 할까요
이럴 때일수록
서로 상부상조해야죠
참, 장고예요, 이름이
성은 냉 씨고요
책들은 세상이에요
네에, 심 봤어요~!
그래, 세상은 집이 새로
생겨서 좋고, 장고는 심심하지
않아서 좋겠구나
그럼 이제 어서어서 들
장고를 향해 돌진~!
그렇게 세상은 숯과 커피 향이
물씬 풍기는 쾌적한
장고로 들어갔답니다
나의 양자 들이여, 이제 한결 낫지?
낫다 뿐이겠어?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라
아니, 다 같이 잘 살자꾸나
이상이에요
고운 꿈 꾸시고요
♥ 잘 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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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먼저 냉장고를 깨끗이 닦아야겠죠?
둘, 선풍기를 이용해 습기를 제거해 주세요
셋, 냉장고 탈취제로 음식 잡내를 제거하시고요
넷, 향기로운 방향제를 놓아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