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지치는 날들이었다. 겨우 난 틈에 끊은 항공티켓. 이코노미석에 끼어서 잠시 졸기도 하고 뒤척거리다 기내식이 나왔다. 좁은 식탁 위로 옮겨 받은 플라스틱 뚜껑 같은 걸 열다가 식기들이 다 흩어지고 난리가 났는데 옆 자리에 앉았던 중년의 여성 분이 조용히 냅킨을 건네고 뚜껑을 열어주셨다. 타인의 호의는 종종 받아봤지만 이렇게까지 불쑥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어서 잠깐 놀랐는데 이게 그걸로 끝난 게 아니라 연달아 음료를 건네주시거나 다 먹은 후 식기반납을 도와주시는 등 연속기였던 게 기억난다.
매번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표시를 하긴 했는데 나도 다 큰 성인이라 어딘지 조금 위화감이 들었었다. 타인을 돌보는 게 너무 익숙한 손놀림 아닌가 이거. 아마도 아이나 노인을 돌보는 일을 업으로 하시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행 내내 한 마디의 말도 건네시지 않았던 무뚝뚝한 분이셨는데 손길은 무척 다정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타인을 돌보는 행위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부드러움이 스며들기 마련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후로도 비행 내내 모니터로 영화를 보고 잠을 자고 기지개를 켜고 책을 뒤적이며 우리는 완벽한 침묵 속에 돌보고 감사하는 제스처를 교환했다. 아직도 그게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미 다 큰 어른인데도 난 안전함을 느꼈다. 약간의 부끄러움과 함께.
습관적인 돌봄.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사려 깊은 배려의 마음. 숙련된 노동의 흔적 속에 각인된 사람을 향한 다정함이 당시 내게는 무척 큰 위로가 됐었다. 어른이 되면 대개 저절로 멀어지는 것들이라.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정말로 우리의 대화는 감사합니다 말고는 거의 모두 제스처였으니까. 그럼에도 지금도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간혹 그 짧은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녀에게도 누군가가 그 다정함을 돌려주는 시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그처럼 말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능숙하게 돌볼 수 있는 능력이 내게도 있다면 좋을텐데 새삼 난 여전히 애새끼구나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