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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Aug 28. 2024

기술 이전에 존재하는 문제들

딥페이크 성범죄

웹서핑을 하다 보면 남초 사이트를 자주 접했었다. 그러다 보니 몰랐던 것들에 대해서 정말 많은 걸 알게 됐다. 익명의 게시판에서는 여자친구를 쌍년이라고 부른 달지 여성인 직장 상사나 선배를 성적으로 비하하고 신상을 공유하기도 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날 것 그대로의 게시글들을 접했다.


그 분위기를 유지하는 주요한 한 축은 포르노였다. 품번을 공유하고 여배우를 추천하면서 남성들은 연대를 공고히 해나갔다. 여성을 물건으로 취급하면서 고양하는 자존감. 여성 비하에 문제제기 했던 몇몇 남성들은 씹선비로 불렸다. 그렇게 성착취와 여성 혐오는 게임이나 스포츠같이 여겨졌고 결국 하나의 문화가 됐다.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7181640011#c2b


딥페이크를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기술에 주목해 신종 범죄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적절한 순간 제압하지 않고 방임하며 오히려 은근히 권장해 왔던 성착취의 문화가 여전히 살아남아있는 것뿐이다. 실로 오래 전승되어 온 내림범죄다.


최근 딥페이크 사건과 더불어 다시 터져 나온 게 친족성착취범죄다. 가해자의 상당 부분이 아버지, 오빠, 사촌 등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는 친족이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부분의 친족들은 범죄 앞에서 여자아이들을 조심시키고 침묵을 강요하면서 동시에 가해 남자아이들을 싸고돌았다. 그 결과가 가정에서 학내로 옮겨지면 유독한 또래문화를 형성한다. 여성을 동료시민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비인격화하고 비하할수록 더 용감하게 느껴지는 기괴한 영웅심리. 실제로 딥페이크 범죄에 지인인 여성들을 상납하는 가해자들은 스스로가 대단한 인물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고 리플을 달았다. 이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면 이게 결국 사회생활까지 이어지게 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2/0002347572?sid=102


오래전부터 종종 이야기해 왔지만 주변 여성 중에 성희롱과 추행에서 자유로웠던 사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들의 주요한 생애주기의 순간마다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된다. 선생, 의사, 교수, 멘토, 동료, 친구를 가리지 않고 모든 관계의 범위 내에 가해자가 고루 존재한다. 가해자의 배경만 살피더라도 문제의 심각성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학교, 병원, 직장 등 거의 모든 공간에서 범죄와 마주친다는 말이므로.


문제를 고발하거나 목소리를 높이면 나쁜 년이 되고 직장을 잃거나 심지어 묵살당한다. 경찰도 학교도 기업도 제대로 피해자를 지원하고 정의를 실현하며 피해를 회복시키기에는 아직 역량이 모자라다. 오히려 많은 경우 2차 가해를 당한다.


와중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시스템 밖으로 뛰쳐나오는 여성들, 그러니까 가출 청소년, 여성 장애인, 여성 노숙자의 경우 그 상황 속에서도 밥을 사주거나 재워주겠다며 성착취를 하려 드는 인간들을 마주한다. 우울증으로 생사의 기로에 위태롭게 서있는 순간조차도 성착취 가해자들은 그 취약함을 이용하려 든다.


https://news.cpbc.co.kr/article/837938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1180966?sid=102


모든 삶의 경로에서 여성들은 아주 촘촘하게 성폭력과 성착취의 시도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게 만나는 거다.


진절머리가 난다. 지긋지긋하고. 여전히 이번에도 사법체계가 행정기관과 교육기관이 그리고 언론이 유의미한 개입을 할까 확언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발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시정하고 바로잡길 요구하는 여성들의 힘까지 간과하고 싶진 않다. 여성활동가들, 여성매체들, 여성단체와 여성 학자들. 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력하며 쌓아온 변화의 역사는 실로 엄청났다.


멀리는 호주제의 폐지가 원스톱 성폭력 피해 지원시스템인 해바라기 센터의 설립이, 가까이는 서지현 검사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의 미투가 세상을 급격히 진보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의 노력은 고립된 존재들과 별건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외로운 사건들을 연결시키며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지현 검사가 촉발시킨 미투운동은 1980년 5.18 당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7/0000007655?sid=102​​


실로 그녀들은 악전고투하며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들을 만들어내오고 있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제대로 된 시스템의 지원도 없이, 다만 해야 할 것들, 해나가야 할 것들을 차근히 준비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망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무도 해내지 못한 것들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그것을 지속해 온 사람들이 끝내 자신의 손으로 세계를 바꾸는 광경을 보고 싶다.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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