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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Oct 26. 2024

무도인은 무엇을 지키는 가

홍콩 무협의 귀환, 구룡성채

모든 건 다 변해.

절대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

폭력물과 무도물을 가르는 기준은 모호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도는 소중한 것을 지킨다는 본령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폭력물을 좋아하면서도 한국의 폭력물에는 면역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이유도 아마 이것 때문인 것 같다. 그곳에는 대체로 지켜야 할 것이란 게 없다. 다만 생존을 위한 것일 뿐.


무협물이나 누아르 물을 볼 때마다 기시감이 들 때가 있다. 많은 경우 영웅들은 작은 인연이나 타인들이 보기에는 별일 아닌 은원을 중시하다 폭력의 소용돌이로 내몰린다. 그리고 꽤 자주 돌이킬 수 없는 파멸과 파국의 결말을 맞이한다. 가족과 제자, 문파와 가문 전부를 내어주더라도 끝끝내 놓지 못하는 단 하나의 어떤 것. 그것은 이미 오래전 유명을 달리한 벗과 한 부질없는 약속이었거나 혹은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는 뜨내기에 대한 연민 같은, 이들을 현실 속에 굳세게 얽매고 있는 속세의 것들에 비하자면 아주 작고, 일시적인 고리처럼 허약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구룡성채에서는 그 유약한 끈이 바로 찬록쿤이고.

영화를 보는 동안 뜬금없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생각났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바람에 휘말리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단 한 사람이 의미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녹록하지 않은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남았으면서도, 그렇게 쌓아 올린 자신의 모든 것들을 마작이라도 하듯이 한 순간에 다 던져 넣는 그 열기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사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 바로서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포기하면 안 될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가시적으로 다 허물어져가는 건축물들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허물어질 듯 허물어지지 않는 구룡성채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이 전선처럼 얽혀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나무처럼 단단히 뿌리 내린 공간이다. 손가락으로 밀면 한꺼번에 부서져 내릴 것 같은 난삽한 건축물이지만 인간이란 그렇게 허약한 존재가 아니다. 서로에게 기대고 엮이면서 인간은 부서져내리는 것들을 덩굴처럼 다시 단단히 쌓아 올린다. 건물 위에 또 다른 건물, 그리고 그 건물 위에 또 다른 건물이 올라가는 동안 서로가 함께 생존해 온 시간들은 길고 긴 역사가 되어 건축물의 하방을 굳건히 받혀내는 토대가 된다.


이름 모를 도망자가 어두운 골목으로 가쁘게 숨어 들어오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좁디좁은 그 공간 안에 어떻게든 그가 몸을 뉘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낸다. 따뜻한 음식과 음료를 나누면서. 각자 살아내기 위해 서로의 사정을 돌아볼 틈도 없는 생활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관계 속에서도 스스로가 인간임을 잊은 적 없는 자들은 끝내 깊이 얽혀 서로의 지지대가 된다. 그들이 사는 공간처럼.


그리하여 도저히 생명이 깃들지 않을 법한 삭막한 건축물 속에서도 아름다운 것들을 기어이 피워낸다. 마치 그게 인간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그렇게 발견한 온기는 우정과 은애, 의리와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황량한 생 속에 작은 연을 띄워 올린다. 벽들이 끝을 모르게 올라가 하늘이 거의 보이질 않는 곳에서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말라는 듯이. 살아남기 위한 오늘만이 아니라 아름답고 풍요로운 것들을 기대하는 내일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처럼.

싸이클론은 무도인의 전형이다.


무도란 무엇인가를 지키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내려야 하는 냉정한 결단의 순간 사이사이에서도 싸이클론은 사람이라면 응당 지켜내야 하는 것들을 결코 잊지 않는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생사가 갈리는 싸움판 속에서도 그는 망설이고 추억하고 기억한다. 약한 것에 대한 연민, 형제에 대한 의리, 벗에 대한 애정을 먼저 상기하지 않고서는 그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많은 싸움 씬에서 싸이클론을 다른 인물들과 결정적으로 구별 짓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작은 망설임들이다.


그는 그를 인간으로 남게 하는 연원들을 오래 기억하고 그 기억들을 소중히 여기며 싸움을 선별한다. 생각 없이 여자를 패고 싸움이 벌어지면 주먹부터 나가는, 과거의 원한에 사로잡혀 중요한 것들을 잊고야 마는 소인배들과 달리 그는 오래 고심하고 싸우지 않기 위한 방법을 먼저 찾아 나서는 사람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유혈사태를 꺼려하는 품성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그를 끊임없이 싸움판으로 밀어 넣는 것도 바로 이 작은 망설임들 때문이다. 싸워야 하는 판을 가리면서도 그 망설임들은 그를 더 큰 싸움판으로 내몬다.


떠올려보자면 그가 도망자를 받아들였던 순간은 그의 정체를 알기 전이었다. 다시 말해 싸이클론은 특별한 관계로 매어있지 않았더라도 타인을 위한 연민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구룡성채의 온갖 대소사에 참견하고 다니는 아저씨의 모습은 그래서 무척 자연스럽다. 그렇게 그의 비극은 필연이 된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도망자의 신원을 알게 된 이후 그는 비통한 마음을 토로하지만 그의 비극은 오래된 은원의 결과가 아니라 다만 그가 한순간도 자신이 사람임을 잊지 않는 무도인이었기에 발생한 것이며 그렇기에 그의 파멸은 이미 예정된 숙명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소중한 것들을 헐값에 넘겨버리는 싸구려 세상에서  무도인들은 저항하기를 선택한다.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을 잃는다 하더라도 싸이클론에게 찬록쿤을 위한 싸움은 물러설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친구의 부탁이나 체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그가 사람으로 바로 서기 위한 유일한 길에, 그러니까 외통수에 놓여있는 것이었기에.


무도인의 싸움은 일견 타인을 위한 것으로 보이기 쉽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지키려 드는 싸움을 선택하니까. 그러나 무도의 본질은 타인이 아닌 자신을 구하기 위한 싸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는 누군가를 지킴으로서 자신을 지키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달리 무도는 폭력이 아닌 구도의 길과 맞닿아있다.


표면적으로 싸이클로는 찬록쿤을 지킴으로써 오래전 중요한 약속을 완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가 찬록쿤이 아니었어도, 결국은 다른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섰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에게 싸움이란 생존을 위해 매일매일 가혹한 세상을 상대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자신으로 남게 해주는 가장 좋은 것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치러야 하는 값이기 때문에.


수시로 끊기는 전기와 물, 제대로 통행하기도 어려운 냄새나는 골목들 사이에서도 인간은 함께 웃고 울고 서로 돌보며 마음을 놓을 곳들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먹을 것과 마실 것만으로는 살 수 없는. 이들은 메마르고 강퍅한 곳에서 지기를 만들고 스승을 존경하며 다음 세대들을 위한 길을 내고 불의에 항거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간다. 이 감각을 잊지 않는 것. 살아남는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기억하는 것. 먹고 마시고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눈을 들어 이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도 안온한 틈새를 어떻게든 찾아내 그것을 지켜내는 것. 태어나는 것은 어찌 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다갈 것인지, 자신의 마지막은 스스로의 의지로 맺어내는 것. 그리하여 생을 어떻게 살아냈었는지를 후대가 기억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 그러니까 싸이클론은 자신의 생을 세상이 어떻게 기억하게 할 것인지를 선택한 거다.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비극들이 생을 잠식하며 내 안에 가장 좋을 것들을 싸게 내놓으라고 고함을 지른다. 혼자서는 도무지 막을 엄두가 안나는 거대한 고난과 사건 앞에 용기와 우정, 애정과 존경과 같은 값나가는 것들을 헐값에 내놓고 나면, 텅 비어 초라하다 못해 비참하기까지 한 스스로의 바닥을 목도하고 수치심을 견딜 수가 없어진다.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구나 나는. 그리고는 다시 떠올린다. 어쩔 수 없이. 어떻게 반격해 볼 도리도 없이 거대한 세상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도 다시는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수없이 찬탈당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금씩은 내 안에 남아있는 그 좋은 것들을 기억해 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것만이 나를 나로 남을 수 있게 하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정말로 전부 휩쓸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만 같으니까.


구룡성채의 무도인들은 바로 그 남아있는 작은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싸움에 나선다고 생활이 풍족해지는 것도 아니고 얻을 게 하나 없는,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손실만 남는 거래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싸움들을 기꺼이 시작하며 지켜내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세상에 빼앗기고 또 빼앗겼지만 아무도 약탈해갈 수 없는, 아주 작고 유약해 보지만 실은 자신을 이루고 있는 가장 견고하고 중요한 코어를 내어주지 않기 위해서. 비록 몸은 진흙 속에 구를지언정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 의지가 그를 무도의 길로 나서게 한다.


당신이 아무리 낮은 곳에 위치해도, 당신이 아무리 어려운 고난 속에 서 있어도 끝내는 당신과 우리를 묶어낸 이 마음 마저는 꺾지 않겠다는 결심. 끝없이 소중한 것들을 약탈해 가는 세상 앞에서 이 작고 작은 인간성의 한 조각만큼은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기세야말로 무도인의 시그니처다. 거대한 폭력에 끝끝내 굴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겠다는 결기. 이 단단한 결의 앞에 물리적 승패는 신기루일 뿐 무도인은 결코 지지 않는다. 무도란 그런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무도인으로서 싸이클론은 자신과 자신의 세대가 쌓아 올린 구룡성채라는 인간성을 수호하는 데 성공한다. 신이와 찬록쿤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세대는 그래서 구룡성채를 벗어나야 한다. 찬짐과 싸이클론이 만들고 지켜온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 자신들의 역사를 써나가야하니까. 선대가 지켜온 것들을 소중히 전달받아 후대로 이어가면서.

모든 건 다 변해.

절대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


식민지배와 강제병합이라는 거대한 폭력 속에 휩쓸리면서도 생존을 넘어 살아가는 데 언제나 성공해 온 홍콩의 역사가, 그리고 그 안에 씨실과 날실로 굳건히 얽혀온 영화와 예술과 같은 아름다운 가치들이, 그러니까 자유와 독립이라는 풍요로운 것들을 향한 열망과 사랑이 구룡성채라는 공간 속에 깃들어있다. 싸이클론과 찬짐이 서로를 죽여야 하는 가혹한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우정과 의리를 나눴던 것처럼 모든 것들을 다 약탈당하고 난 뒤라도 홍콩의 코어에 남은 가장 좋은 것들을 결코 놓지 않으리라는 어떤 결기를 이 무협물에서 감지한다.


싸이클론이 그러했듯이 인간사의 굴곡은 피할 길이 없고 시대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기에 미래의 홍콩은 과거의 홍콩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 결의의 시간들을 우리가 함께 기억하는 한, 구룡성채는 철거되어도 그 정신은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다. 후세대의 무도인들이 그들을 성장시켜 온 세상의 안온한 틈새를 떠나 또 다른 구룡성채를 쌓아 올릴 거니까.


우리 안에 가장 좋은 것들을 결코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싸우기를 멈추지 않을 거니까.


p.s 언제나 여성 캐릭터들의 사용에는 불편한 마음이 든다. 무공을 연마하면 무쇠도 씹어먹는 세계에서 여성 무협인들의 자리도 분명 있을 텐데도 구룡성채에서 여성은 비극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소재로만 사용된다. 더욱이 문제적인 것은 이 비극적인 사건이 남성 주인공들의 유대를 쌓아 올리는 계기로 다소 장난스럽게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내가 무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런 씬을 마주하게 되면 매우 곤혹스럽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열혈 무협의 즐거움을 오롯이 담은 영화다. 무협을 좋아하는 분이시라면 영화관에서 관람하시기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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