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 리뷰 외전
어른이 되다 보니 (너무 눈부셔서) 빅토리를 진짜 시작부터 끝까지 울컥거리면서 봤는데 역시 필선의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다. 아버지라기보다는 부모세대, 부모라기보다는 필선보다 더 오랜 시간을 세상 속에서 버텨온 존재에 대한 것이란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용우에게는 필선 같은 용맹함이 없다. 아마 기질이나 성정이 딸과는 조금 다르겠지. 상상을 넓혀보면 필선의 뜨거움은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용우에게도 용우만의 강함이 있다. 거제라는 보수적인 공간에서 필선의 자유로움을 제한하지 않았다는 건 그녀가 외동딸이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을 테지만 용우는 여자들에게 커피를 타오게 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도시에서 딸을 아들과 다름없이 키운다.
으레 그 세대 아버지들이 그러했듯이 퇴근 후 필선에게 저녁밥을 차리게 할 법도 한데(실제로 미나네 집은
아이들의 밥을 장녀인 미나가 챙긴다) 용우는 자신의 밥을 스스로 차리며 오히려 딸의 끼니를 착실히 챙긴다. 나는 어쩌면 이 장면들이야말로 무협지의 주인공 같은 필선의 비현실적인 씩씩함과 구김 없음의 근원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폭력적인 위계의 세계에서 노동을 하면서도, 자신 역시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면 꼼짝없이 하청을 부리는 갑의 위치에서 가해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그런 사람이라 용우는 버틴다. 자기 밥을 자기 손으로 차려먹는 사람이라서. 돌봄을 타인에게 하청주지 않는 사람이라서.
조선업이 주력 산업인 남자들의 도시. 영화 속에서는 다소 표백되어 무해하게 그려지지만 그곳에서 여자아이들은 오빠와 동생들을 돌보느라 여력이 없고 하고 싶은 태권도도 못하며 일 대신 커피나 나른다. 먼저 상경한 필선의 또 다른 친구처럼 영화 속 거제는 지역의 여성들이 재능을 펼칠 수 없는 곳이기에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결국 떠날 수밖에 없는 장소인 셈이다. 남성들에 의해 돌아가는 도시의 정서는 미시적으로도 일상에 침투할 수밖에 없는 법이니까.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 관리업체와 하청직원, 상무와 사원, 서울과 지역 그리고 남성과 여성.
층층이 쌓인 촘촘한 위계.
위계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게 끊임없이 다른 세계로 전이한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밖에서는 관리자에게 쩔쩔매는 하청 노동자가 집안에서는 폭군으로 군림하거나 하는 식으로) 용우는 이 위계의 체인을 자신의 선에서 끊어버린다.
고향 후배로 보이는 관리자가 위계의 폭력을 내림하는 상황 속에서도 용우는 그걸 자신의 아래로 전이하길 거부하고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와 마침내 머리에 붉은 투쟁의 띠를 두르는 결심을 한다.
필선처럼 위계? 그거 알바 없고 내 하고 싶은 건 댄서다. 라며 시스템을 자체를 파괴하는 영웅은 아니더라도 용우는 용우 나름의 방식으로 흔들리며 강인하다.
위계의 약점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시스템 안에 존재할 때임을 기억한다면 용우의 결단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런 용우가 소중히 지켜낸 아이이기 때문에 필선의 불씨는 답답한 지역 사회의 가장자리에서도 손상 없이 건강했고 끝내 시스템으로부터 지극히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거다.
이 점이 아주 오래 내 마음을 붙잡고 있다. 현실적이면서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였고 나 역시 이런 어른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른이란 저런 거겠지. 내는 세상이 어렵다 하면서도 그 불안과 공포를 아이에게 전이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거. 그런 방식으로 자신에게 소중한 영역을 망치지 않고 지켜내는 것. 언젠간 눈부시게 빛날 그 가능성을 보호하는 것. 그렇게 자신도 세상에 지지 않는 것.
여러모로 여러 번 생각나는 영화 빅토리.
꼭 영화관에서 보세요.
거제도 좁은 필선이 스케일은 와이드 스크린으로만 담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