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송의 프라렌>과 <바사라>
<장송의 프라렌>을 안 봤지만 서사의 뼈대를 듣고는 곧 이건 인간과 반려 동물들의 이야기 아닌가 생각했다. 엇갈리는 수명과 이로 인한 감정의 낙차, 그리고 뒤늦게 시작되는 진짜 사랑까지도.
서로 다른 종이라서 발생하는 그 모든 필연적인 오해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생에 끝내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새기는 관계.
실은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삶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하기에 언제나 내 근처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 우리는 겪어보기 전까지 절대 알지 못한다.
내겐 인생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만화들이 몇 있는데 <바사라>가 그중 하나다. 어느 에피소드 중 하나가 주인공 사라사가 좋아하는 슈리와 다음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 직 후였나 누군가 ‘사랑한다면 어째서 그 남자를 잡지 않았어? 곁에 있어달라고.’라고 하자 사라사는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작품의 배경은 전쟁이 한창인 혁명의 시간이었고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는 ‘다음에 만나자.’라는 이 연약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말하지 않았을까. 두 번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 내용은 작품 속에서는 슬쩍 지나가는 한 부분이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이 장면 속에 아주 오래 붙잡혀있다. 모래 사막과 여성이 주도하는 혁명, 그리고 적국의 왕과의 사랑이라는 거대한 도파민 속에서도 유독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 이 작은 에피소드야말로 오롯이 우리의 생을 관통하는 내용이 아닌가 싶어서.
인간은 지적이지만 동시에 어리석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오만함 속에 놓치길 반복한다. 그리고 그 의미를 깨달을 나이가 되면 지나가버린, 그러나 충분히 행복했던 순간들을 더 소중히 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기 마련이고.
함께 살던 개가 나이가 들어 죽었을 때 같이 바다를 가 본 적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개는 인간이 아니라 바다를 보든 산을 보든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이라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세상의 전부를 보여주고 싶다는 게 이런 마음이려나.
다음에 보자고 헤어졌지만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다른 관계들 역시 하나하나에 크고 작은 후회들이 하나하나 쌓여 깊은 틈을 만들어 낸다. 이제와서는 뭘로도 메꿀 수 없을. 읽히지 않고 남겨진 메시지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가닿을 방법이 없는 마음은 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이라, 어리석고 오만한 존재라서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져도 완벽한 사랑을 해낼 수 없을 것 같다. 전생을 하든 회귀를 하든 우리의 생은 후회를 피해 갈 수 없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이것 하나일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존재들을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사랑하라. 납득이 잘 가지 않더라도 해낼 수 있는 한계보다 더 많이. 너의 120%로. 그리고 후회하라. 원 없이. 가능한 한 오래 우리가 잃은 존재들을, 함께한 시간들을 기억하면서. 그게 인간의 숙명이니 렌고쿠식으로 말하자면 나약해서 아름다운 이유일 거다.
초롱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