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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Oct 04. 2023

나의 동료 시민, 주윤발

old fashioned but classic

전성기만이 아니라 일생동안 슈퍼스타의 품격을 유지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대중매체의 누군가에게 애정을 쏟아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한 번이라도 누군가의 팬이 되어본 적이 있던 사람은 이해할 거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환경과 시간의 흐름 속에 휩쓸리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신흥귀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격차가 심해진 연예계. 그 산업 언저리에서 일을 하면서 간혹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조명 보조와 스타의 임금격차가 이렇게 나도 되는 걸까 하는. 작품의 흥행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타의 재능과 유명세가 맞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 정도의 격차가 합당한 것일까?


이 세계에서 유명세란 권력과도 같아서 이름이 알려질수록 높은 계층으로 솟아오른다. 축적되는 부의 스케일도 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 전혀 다른 계급이 된 스타들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자리에 남아있는 팬들은 사랑하던 스타가 구설에 오르내리는 광경을 지켜본다. 범법을 저지르거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모습들. 낮은 곳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함께 부대끼며 자라나도 유명인의 반열에 오르는 순간 지나온 길은 잊기 쉬워진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오히려 분명히 걸어온 길들을 되짚는다. 바쁘게 지나가버린 시간 동안 자신이 놓친 것들은 무엇인지, 지금 스스로에게 비어있는 공간들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것인지를 세밀하게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오래전, 폭력물을 좋아하던 아이였던 나에게 홍콩 영화는 무척 매혹적인 세계였다. 홍콩의 거리처럼 이국적이고 복잡한, 어딘지 조금 과장되어 있지만 농도 짙은 무엇인가가 공기 중에 여전히 살아있던 시대의 영화. 작품 속 주윤발은 언제나 정의라는 명분 앞에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자신을 희생하고는 했다. 중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의협이었고 서구식으로 말하자면 기사도가 있는. 총과 선글라스도 근사했다.


손에 땀을 쥐고 그의 활약을 지켜보던 시절이 지나가고 한동안 미드니 마블이니 다른 영화들에 빠져있던 내게 이따금 그의 소식이 들려왔다. 아주 오래전에 작은 박스에 넣어뒀던 따거는 여전히 홍콩에서 살고 있었고 경호원 없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목격담이 전해지곤 했던 것이다. 세계적인 스타가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는 소식에 그거 참 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할리우드에서도 간혹 키아누 리브스가 노숙을 했다던지 작은 식당에서 목격됐다던지 하는 소문들을 듣긴 했지만 주윤발이라니. 어딘지 그답다는 생각도 잠시 다시 꽤 오랜 시간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홍콩 시위 소식이 들려왔다.    


슈퍼스타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 역시 한 사람의 동료시민임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적 발언으로 비웃음을 당하거나 공격을 당하면서도 배우이기 이전에, 가수이기 이전에 자신이 자라난 시간과 공간을 되돌아볼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함께 이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자신이 가진 영향력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고 때로는 그 짐을 가볍게 벗어버리기도 하면서 노동하고 자유를 찾는 하나의 존재로서 기꺼이 그들의 팬들 곁에 서서 어깨를 걸고 함께 시대를 돌파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간간이 매체를 통해 전해지던 그의 소식들을 들으며 아직도 채 다 보지 못한 방대하고 뛰어난 그의 필모보다도 스크린 너머로 느껴지는 사람의 온기에 압도되곤 했다. 그것은 경애하는 배우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의 시민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든든함 같은 거였다.


주윤발에게서 고전적인 인간상을 읽어낸다. 물론 고전적인 미남이기도 하지만. 의리니, 도의니, 정의니 사랑이니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던 시절의 낭만이, 그러니까 우리가 아주 오래전 구식이라고 두고 온 클래식이 그에게는 남아있다.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상당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온 그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돈이나 유명세는 아닌 것 같지. 떠나온 자리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다른 시민들과 함께 한다는 감각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를 보며 잃어버린 가치들을 새삼스럽게 떠올린다. 자꾸 되짚지 않으면 망각하기 쉬운,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휩쓸리기 좋은 소란스러움 속에서 잘 벼리고 단련해서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우리가 한 데 묶인 뿌리를 발견한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 그가 초청됐다는 말을 듣고 잘하면 버스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겠네요 하며 설레는 내게 슈퍼스타인데 그럴 리가 있냐며 우린 함께 웃었다. 2,3일 뒤 부산 지하철에서 목격됐다는 그의 소식을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웃고 말았다. 비록 경호원과 함께였다고 하지만, 역시 따거는 따거구나.


부산으로 가야겠다.

사랑해요. 밀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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