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야모야병 발병과 지금까지, 10년.
1. 글을 시작하면서
저는 희귀난치성질환인 '모야모야병' 환자입니다. 얼마 전, 드라마 <브레인>에 모야모야병에 대한 사례가 나오면서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하고 많은 분들이 신기해하셨다시피, 희귀난치성질환이라 많이 알려지지 않은 병이에요.
'그 병'과 싸우고 있는 환우로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못된 글과 댓글을 쓰는 분들이 많고,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 이렇게 포스팅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모야모야병이라는 판정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더 병에 대한 정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증상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무슨 증상인지 몰라 이리저리 검색해보고 있을지도 모를 환우를 위함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2. 발병
모야모야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즈음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맵고 뜨거운 걸 마시거나 먹으면(라면 국물 같은 것) 몸이 이상해지더라고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자꾸 넘어지고 머릿속에선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멍-했어요.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촉감도 이상해지더라고요(나중에야 이 증상이 혈액순환이 안 돼서 나타나는 '허혈성발작'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몸상태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어요. 그 후로 맵고 뜨거운 걸 먹을 때마다 그 증상이 꾸준히 반복되더라고요. 증상이 나타나는 정도는 5분 안팎이었고요. 그런데도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던 건, 어렸어서 남들 다 그러는건 줄 알았기도 했고, 혼날까봐였어요.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했고 편식도 많이 하고, 체하기도 엄청 자주 체해서 이 증상을 얘기하면 '밥이나 많이 먹어라'라는 꾸중을 들을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3. 모야모야병의 진행
그렇게 저는 6학년이 됩니다. 6학년 때 학급 부회장을 맡았었어요. 매주 금요일이었나, 학급회의를 했는데 화이트보드 앞에 나가서 보드마카로 칠판에 글씨를 쓰다가 실수로 보드마카로 다른 친구의 옷에 선을 그으 적이 있어요. 그 친구는 화가 나서 옷을 벗으며 '니가 빨아와라'라고 했는데 먼저 미안하다고 했기 때문에 그 친구의 그 '쪼잔함'에 굴복하기 싫어서 싫다고 하다가 크게 싸움이 났어요. 마침 그 날은 담임선생님이 안 계신 날이었어서 싸움을 말릴 어른도 없었어요. 어찌어찌 애들이 말려서 울면서 집에 갔어요. 모야모야병이 심하게 울어도 증상이 나타나거든요. 집에 가는 길에 또 그 증상이 나타나는겁니다. 속으로 '울음을 멈추고 이 증상이 없어지면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집이 아니면 갈 데도 없고, 몸도 마음대로 되지 않게 될테니 위험할 것 같아 할수 없이 울면서 집에 들어갔어요. 엄마가 울면서 집에 들어온 절 보고 왜 우냐, 누구랑 싸웠냐고 다그쳤지만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머릿속에 뭐라 말을 해야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고, 입 밖으로 말도 나오지 않아서. 저는 답답해서 계속 울고, 엄마도 답답해서 화가 나고. 결국 엄마 손에 이끌려 학교에 가서 자초지종을 듣고나니 증상이 풀리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학교 3학년이 됩니다. 중3이 되면서 모야모야병 증상이 나타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더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점심 때 매운 반찬을 먹고 그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빨리 교실에 들어가야겠단 생각에 식판을 옮기다가 넘어져서 친구들의 부축을 받고 보건실에서 쉬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 날은 2005년 10월 중순이었어요. 어느날 집에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건 틀림없이 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는 생각. 그래서 엄마한테 정말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콧방귀를 뀌시면서 '빈혈이니 밥이나 많이 먹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화가 났지만 티비에서도 어디에서고 저 같은 증상을 들어본 적 없었기 때문에 뭐라 반박할 수 없었어요. 엄마도 조금 신경이 쓰이셨는지 동네 의원에 데려가서 진찰을 받게 해주셨지만 그 선생님도 빈혈이다, 저체중이네, 스트레스성이네 하는 말씀만 하셨고요. 진찰 받은 날은 2005년 10월 25일이었어요. 일기를 쓰니 날짜는 정확하게 알 수 있어서 좋네요.
4. 뇌출혈
해가 바뀌었고, 설 하루 후였나, 설이었나 아무튼 고1 올라가던 2006년 1월 말이었어요. 방에서 혼자 문제집을 풀다가 밥 먹으러 오라는 얘기에 일어나서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뒷목이 엄청 아프더라고요. 너무 아파서 조금 누워있자, 하고 누워있다가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들었어요. 일어나지지 않았어요. 평소와 다르게 '그 증상'이 나타나는 시간이 길어서 짜증이 났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일어나보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갑자기 속이 미식거리면서 토할 것 같았어요. 일어나서 화장실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을 안 들으니 결국 누운 채로 구토를 했어요. 토한 채로 '어떡하지' 하고 있었는데 마침 동생이 방에 들어와서 절 보고 깜짝 놀라면서 방을 닦고 1층으로 후다닥 뛰어내려가더라고요. (저희 집이 상가건물이에요. 1층이 엄마 미용실, 3층이 저희 집)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와 동생이 들어왔고, 엄마는 온 몸이 굳은 채 눈만 뜨고 있는 절 보고 놀라셔서 제 옷을 벗기시고 동생에게 약국에서 물청심환을 사오라고 시키신 후 제 손을 따셨어요. 동생이 사온 물청심환을 먹고 엄마가 아빠에게 전화해서 제가 아픈 것 같다고 병원에 가자고 부르셨어요. 아빠가 절 업고 1층으로 내려가고 택시에 탔어요. 아빠 무릎을 베고 누웠던 것 같은데 또 구토가 나더라고요. 아까 엄마가 먹인 물청심환. 토하고나서 "에이 아까 물청심환 먹어서 또 토했잖아"라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그 기억 다음은 병원에 누워있더라고요. 대학 병원이었나봐요. 나중에 들은건데, 처음엔 동네 의료원으로 갔다가, 선생님이 부모님께 '외상이 없으니 CT를 찍어보자'고 하셔서 CT를 찍었더니 뇌출혈이 됐다고 나와서 대학병원으로 옮긴 거라고 합니다. 엄마는 병원으로 따라가지 않고 집에 와서 동생과 오빠를 불러놓고 '윤정이가 뇌출혈이란다' 하면서 우셨다고 합니다.
5. 충남대병원과 삼성의료원
그렇게 저는 충대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충대병원에서 8일 있었는데, 뇌출혈 때문에 잠만 자느라 기억나는 건 몇 순간 안 돼요. 동생과 오빠가 병실에 왔던 것, 친한 학교 선배가 왔던 것, 응급실이었는지, 환자가 많은 곳에서 누워있다가 깼는데 간호사언니가 심심할까봐 라디오 틀어줬던 것 정도.
또 다시 눈을 뜨니 엠뷸런스에 타고 있더라고요. 부모님이 계셔서 어디 가는거냐고 물었더니 서울로 가고 있다고 했어요. 이것도 나중에 들은건데, 충대병원에서 제 상태를 보고 잘 모르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게 모야모야병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하는 뉘앙스로 말을 하더래요. 그래서 부모님이 답답한 마음에 병실에서 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병실을 쓰던(전 2인실이었어요) 옆 침대 아주머니께서 모야모야병을 듣고 '내 사촌조카도 모야모야병인데, 삼성의료원에서 수술 받고 잘 지내고 있다. 그리로 가봐라'하셔서 삼성의료원으로 옮긴 거였어요.
응급실에 들어가서 한참 기다려서 진료를 봤어요. 전 그때도 멍-한 상태였기 때문에 엄마 손만 잡고 움직였어요. 진료실에서 기억나는 건, 교수님이 컴퓨터로 뭘 보시더니 저와 엄마에게 '모야모야병 맞네요'라고 얘기한 게 기억나요. 전 그 말을 듣고서도 '아...'하는 생각만 했어요.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며칠 있다가 2인실로 옮길 때까지 하루의 반 이상을 잠만 자며 보낸 것 같아요. 점점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진 건 2인실로 옮기고 조금 지나고부터인 것 같아요. 어느 정도 깨어있게 되니 먹을 것도 먹고 했는데 초반엔 요구르트만 먹고도 토하곤 했었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토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6. 수술
5인실로 옮기고나서 퇴원 이야기가 들렸어요. 회진할 때 교수님이 "검사해보고 퇴원할 수 있는지 결정하자"고 하셨던 것 같아요. 집에 갈 생각에 들떠 있었어요. 얼마 후에 '혈관조형술'이라는 검사를 했어요. 사타구니에 마취를 한 후 살을 찢어서 혈관에 카메라선(?)을 넣고 그 선을 뇌까지 올려서 뇌혈관을 촬영하는 검사였어요. 검사하고 나서 수술을 해야한다는 결정이 났어요. 수술하면 예전 같은 증상 없어지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셔서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술 전에 환자 동의서에 싸인할 때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요. 밤에 신경외과병동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간호사 언니가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가봤더니 모니터로 제 뇌혈관 모습이라면서 보여주더라고요. 혈관들이 꼭 실 한뭉텅이가 엉킨 것처럼 엉켜 있었어요. 수술하면 이게 풀어지는 거라고. 그렇게 싸인을 하고, 엄마도 싸인을 하셨어요.
모야모야병 수술은 80%의 성공률이라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설마 내가 80% 못 들겠어'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어요. 일부러 엄마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한 것도 있었고요. 전 좌 뇌, 우 뇌. 이렇게 두 번의 수술을 했는데 1차 수술은 2월 말에 좌뇌 수술을 했어요. 왼쪽이 오른쪽보다 심하다고 해서.
수술날 아침, 검사할 때마다 검사실에 데려다 주시던 아저씨가 오셔서 침대차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가 우셨어요. 저는 일부러 웃으면서 '에이 엄마 왜 울어'했어요. 왠지 저까지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수술대기실에 있다가 수술실 들어가면서는 "엄마 나 잘하고 올게! 자고 일어나면 끝인데 뭐!"하면서 밝게 들어갔어요. 어쩌면 뭘 몰랐어서 그렇게 용감했던 것 같아요. 수술대 위에서 준비하는 간호사 언니들한테 너무 춥다느니 하는 얘기도 하고, 머리 많이 자르지 말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어요. 마취를 해본 적이 없어서 마취할테니 눈 감으라고 했는데도 '마취할 때 느낌 어떤지 궁금하다'면서 눈 안 감고 버티다가 어지러워서 '아 어지러!'하고 눈 잠깐 감았다가 뜨니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이더라고요.^^;
1차 수술은 잘 끝났고, 신기하게도 왼손 움직임이 부드러워졌어요. 우뇌출혈 후에 왼손의 움직임이 아주 더뎠었거든요. 손목에 힘도 없고.
2차 수술은 4월 초에 했습니다. 3월 초에 퇴원해서 집에서 보내고 4월에 다시 올라가서 수술 받았어요. 두 번의 수술 다 성공적이었고, 저는 이렇게 대학교 4학년 올라가는 대학생으로 그럭저럭 잘 살고 있어요.
7. 수술 후 이야기
2차 수술까지 마치고 집에 있다보니 병원에 있을 땐 못 느꼈던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고 해야할까? 마침 동생이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서 생활하게 되어서 저 혼자 방을 썼거든요. 밤에 자려고 불 끄고 누우면 오만가지 잡생각이 났어요. 내가 언제 갑자기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들. 그래서 혼자 운 적도 많고, 그러다보니 불면증이 심했었어요. 학교도 가기 싫어지고. 학교 가봤자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난 아프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을텐데 하는 생각들.
그렇게 학교 간 날이 안 날보다 훨씬 많아지고, 학교 가더라도 조퇴한 게 대부분이었어요. 무기력해지더라고요. 병원 외래 때문에 서울 가서 전철 오는 거 보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뛰어들고 싶어지고. 그런 생각이 너무 심해서 저 스스로가 무서울 정도였어요. 지나고보니 그게 우울증이었고, 지금까지도 약물치료를 하고 있어요.
8. 글을 마치며
검색해보고 있을지 모를 모야모야환우를 위해 포스팅을 시작해서, 이렇게 길게 글을 뽑아냈네요. 벌써 9년 이 되었어요. 9년 전 제가 검색했을 땐 아무 답도 얻지 못했었어요. 요즘은 가끔 '9년 전에 브레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면 뇌출혈까진 막을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어요.
뇌허혈방작증상은 환우마다 다른데요, 드라마 <브레인>에 나온 루비처럼 두통을 호소하는 환우도 있지만 전 두통이 있진 않았어요. 리코더도 잘 불었고요. 다만 맵거나 뜨거운 음식을 먹거나, 심하게 울면 나타났어요. 모야모야환자는 2,3년에 한 번씩 MRI&MRA를 찍다가 1년에 한 번씩 찍어서 경과를 확인하는데, 저는 저번 6월 25일 검사결과, 선생님께서 '매년 검사할 필요는 없겠다, 1년에 한 번씩 얼굴만 보자'고 하셨습니다. 제 차트엔 '추적 완료'(경과 지켜보는 것 완료)라고 쓰여있었어요.
참, 다음 카페에 <모야모야가족회>라는 카페가 있어요. 모야모야병 환우와 가족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일상이야기를 나누는 카페입니다. 아직 모르는 환우나 가족이시라면 가입하셔서 정보 공유하세요.
아무쪼록 제 포스팅이 환우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