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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Mar 17. 2024

내 인생의 첫 나이키

앞으로 꽃길만 걷도록 부탁해 

나랑 신발 사러 가자,
너의 신발은 내가 꼭 사주고 싶어 



며칠 전부터 남자친구는 나의 운동화를 꼭 사주고 싶다며 벼르고 있었다. 나의 허름한 휠라 운동화가 참으로 마음에 걸렸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신발, 가방에는 둔한 편이기도 하지만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다. 그래서 늘 신발은 '신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신고 다녔던 것 같다. 언제 샀는지 잘 모르겠지만 인터넷으로 4만 원 정도를 주고 구입한 나의 운동화 두 켤레는 나의 험난함을 함께 한지 오래여서 닳고 찢어진 지 오래다. 


신발장도 조촐하기 그지없다. 


- 키높이 운동화 

- 단화 운동화 

- 여름용 샌들 

- 정장용 구두 

- 슬리퍼 




단출하지만 딱 필요한 것들이 전부이다.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예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작은아씨들'에서 나왔던 지미추 구두,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프러포즈받을 때 신었던 마놀로 블라닉은 나의 드림 슈즈이다. 하지만 당장 내가 그 구두들을 산다고 해서 신고 나갈 명분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나에게는 그저 '필요성'과 '활용성'이 지금은 떨어진다고 판단되어 딱히 목을 메지 않는 것일 뿐 나도 예쁜 것을 보면 예쁘다고 생각하고, 갖고 싶은 마음이 든다. 



늘 나의 운동화를 늘 안쓰럽게 보던 남자친구는 이직을 앞두고 나에게 새로운 신발을 사주고 싶다며 나와 함께 쇼핑몰로 향했다. 쇼핑몰 내에 새로 입점한 나이키 매장에서 쭈욱 둘러보던 남자친구는 나에게 두 가지 운동화를 제안했다. 사실, 내 운동화 취향은 깔끔하고 슬랙스와 청바지 모두에게 잘 어울리기만 하면 딱이다. 

그 외에 내가 바라는 것은 없다. 그런 나의 성향을 잘 알기에 남자친구가 추천한 두 개의 신발을 신어 보기로 했다. 


사이즈를 준비하며 가져온 직원은 '오른쪽으로 신겨드릴게요' 라며 나의 발에 운동화를 딱 맞게 신겨주었다.


새 운동화 사이에 벗어둔 나의 헌 운동화를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이상했고 왠지 모를 머쓱함이 몰려왔다. 편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진흙탕, 빗물 웅덩이, 좋은 날, 바쁜 날, 최악이었던 하루 들에 내 발과 함께했던 운동화가 이제는 색이 바래지고 더러움이 덕지덕지 묻어 새로운 신발 앞에서 참으로 초라해 보였다. 

다행히도 새로운 신발은 나에게 딱이었고, 몇 번 걸어보고서 남자친구가 추천해 준 운동화 중에 가장 무난하고 발이 편한 것으로 골랐다. 내가 고른 신발이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친구도 똑같은 운동화로 신고서 난생처음 커플템으로 나이키 운동화를 샀다. 




헌 신발도 버려주시나요?! 




남자친구는 나의 헌 신발을 버리기를 원했지만 나는 기꺼이 사양하고 내 헌 운동화와 새 운동화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생에 처음으로 가져보는 나이키 운동화였다. 남자친구가 사주었지만 연인 간에 신발을 사주면 안 된다는 미신으로 나는 남자친구에게 '1004원'을 송금하며 우리의 첫 쇼핑을 마무리했다. 


새로운 신발은 늘 나에게 설렘을 안겨주지 않았다. 그저 오래된 것을 대체하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늘 3만 원, 4만 원 제일 비싼 신발이어야 5만 원 정도가 나에게는 충분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10만 원이 넘는 브랜드 신발을 신고 보니 참 설레었다. '속물인가?' 싶지만 왠지 신발 하나로 내가 근사해 보이기도 했다. '왜 나는 늘 나에게 대접하지 못했을까?' '왜 나에게는 그리도 인색한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신발 하나에 설레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꽃길만 걸어가 보도록 하자, 잘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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