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낯설어졌습니다
오늘 아침 딸아이의 원망 어린 눈빛을 봤습니다.
“아빠. 우리 어디 안 가는 거야?”
코로나 19는 이 작은 아이의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린이집에 갈 준비로 분주하던 아이는 당분간 그렇게 신나게 뛰놀던 어린이집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체념하듯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딸아이에게 없던 일상 하나가 생겼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파트 베란다 쪽 문을 열어젖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껏 소리를 높여 외칩니다.
“거기 누구 없어요? 오빠. 어딨어요? 언니. 어디 간 거예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가끔씩 지나가는 아파트 주민의 힐끗거림에도 딸아이는 어떤 동요도 없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잔뜩 힘을 준 채 그렇게 외치고 또 외칩니다.
얼마나 답답할까. 얼마나 친구들이 그리울까. 얼마나 놀이터에서 한껏 어울려 놀고 싶을까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런 아이를 장모님에게 맡겨두고 출근하는 아내와 저는 어쩔 수 없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아이를 봐주시느라 이미 모든 힘을 소진한 듯한 장모님의 얼굴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괜찮네. 지금 상황이 그렇지 않은가? 나야 괜찮지. 아이가 걱정이지. 그러니 나는 걱정하지 말게.'라며 무심한 듯 던지시는 말씀에 말할 수 없는 죄송함을 갖게 됩니다.
모두가 힘든 시간입니다. 이름도 낯선 코로나 19는 우리의 하루하루를 낯설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공간들이 모양도 가늠할 수 없는 위험한 것들로 오염된 것 같고, 당연했던 일상들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 같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경한 두려움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도 합니다. 언제 끝나게 될지 알 수 있는 고통은 견딜만한 시련일 텐데 기한을 알 수 없는 이 위험은 우리를 너무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과 싸우고 있나요?
두려움은 바이러스를 닮았습니다. 눈으로 그 모양을 짐작할 수 없으며 손으로 그 질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는 우리들의 마음을 움켜쥐는 힘이 있고,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 압도적인 감염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려움은 우리 공동체에 과장된 공포를 낳고, 나 외의 모든 이들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함께 있는 것을 두렵게 만드는 것. 그것이 코로나 19가 만들고 있는 두려움의 정체이고, 사실 우리는 이것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이 두려움이라는 바이러스와 그 누구보다 치열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어느 때처럼 함께 있어야 할 환자들의 곁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의료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에게 달라진 것은 마스크를 썼다는 것과 방호복을 입었다는 것뿐입니다.
의료인. 당신은 무엇으로 코로나 19와 싸우고 있습니까?
코로나 19도, 두려움도 그들을 비켜갈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함께 머물러줘야 할 환자의 옆에 여전히 그들이 있고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는 바로 그 지역에 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과 동료들의 두려움, 환자들의 두려움, 사람들의 두려움과 마주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간호사와 의사의 의무를 소명처럼 받아들이며, 신음하고 있는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의료인 모두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이 치열한 싸움에서 여러분을 지키고 환자를 지키는 무기는 무엇입니까? 의학적 지식과 경험입니까? 당신의 마스크와 방호복입니까?”
저는 여러분의 무기가 그 무엇도 아닌 돌봄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전문적이지도 않으며, 흔하디 흔한 표현인 돌봄. 그것이 코로나 19가 만드는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의료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뛰어난 영성가이자 가톨릭 사제였던 Henry Nowen은 돌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돌봄은 깨어지고 무력해진 사람들의 세상 속에 들어가 그곳에서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는 것이며 고통당하는 사람들 곁에 있어 주되,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이 없을지라도 계속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Henry Nowen의 돌봄에 대한 정의가 어떠신가요?
저는 이 문장들을 읽으며 돌봄의 거룩함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여전히 자신에게 주어진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 하는 것. 그래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위로와 희망을 창조해 내는 것. 그것이 돌봄입니다. 이 돌봄이라는 무기는 때로는 메스가 되고 때로는 백신이 되어 우리 사이에 스며든 두려움을 고치고 있습니다. 간호사와 의사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지켜야 할 그 사람들의 곁에서 끝까지 함께 하는 여러분들이 정말로 이 땅을 고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돌봐야 할 가족들이 있을 것입니다. 돌봐야 할 어머니와 아버지를, 아내와 남편을, 딸과 아들을 뒤에 남겨두고, 마음을 추슬러 각자가 돌봐야 할 그 사람에게로 달려가는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안타깝고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두려움에, 아니 위험의 최전선에 있어 더 짙은 두려움에 고통스러울 텐데, 자신의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기꺼이 가야 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여러분으로 인해, 우리는 언젠가 이 위험이 끝나게 될 그날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백신은 있습니다
여러분을 마음을 다해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 간절히 부탁하고 싶습니다. 먼저 여러분 스스로를 돌봐 주세요. 그 무엇도 아닌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두려움을 이기게 만듭니다. 그러니 두려움과 기꺼이 맞서 싸우고 있는 여러분 안의 두려움을 먼저 다독여 주세요. 두려움을 피하거나 부인하면 그 두려움은 점점 더 커다란 괴물이 되지만 그 두려움을 기꺼이 직면하면 그것은 다독일 수 있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됩니다.
매 순간 한계와 맞서며 지친 무릎을 다시 한번 일으키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여러분의 얼굴에 거칠게 남겨진 그 짙은 마스크 자국을 기억하겠습니다.
아직 코로나 19에 백신이 없다고요? 아니,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우리의 백신입니다.
진심으로 여러분의 존재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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