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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니 Jan 07. 2024

여의도 시범아파트에서 산다면 신경 써야 할 것

여의도에서의 2년 

 시범 아파트로의 이사를 결정하고 나니 막상 어떤 생활이 될지 막막해졌다. 다행히 회사 동료 중에 시범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다는 분을 알게 되어 이사 전부터 시범아파트에서 꼭 필요한 것 혹은 준비하면 좋을 것들을 추천받았다. 


1. 오래된 수도관, 수질 걱정  

 배관이 오래된 만큼 녹물이 나올 때가 있고, 기본적으로 수질에 대한 걱정이 있어 요즘 유행하는 샤워기용 필터를 추천받았다. 특히 1주만 지나도 필터의 색이 진하게 바뀌어 자주 갈아주어야 하기 때문에 '가성비'를 1순위 기준으로 구매하라는 것이 시범아파트 선배님의 꿀팁이었다. 세면대와 싱크대, 샤워기까지 총 3개의 필터를 구매해 사용 중이다 보니 실제로 이 필터 리필 값이 만만치 않다.  

 씻는 물은 필터를 사용하지만, 먹는 물은 그마저도 불안한 생각이 들어 생수를 구매해 마시고 있다. 이전 집에서는 브리타를 사용했었는데, 그 마저 생수로 바뀌고 나니 생각보다 물을 쓰기 위해 지불하는 기본금이 높아진 듯하다.  


2. 곰팡이 생길라, 건조의 생활화!  

 집이 오래되다 보니 생각보다 금세 습해지고 습기가 잘 빠지지 않는다. 특히 화장실이 습하고 곰팡이가 쉽게 생기는 편이라 환풍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룸 에어 드라이어를 구비했다.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 화장실 습기와 곰팡이는 많이 줄었는데, 막상 비나 눈이 많이 오면 집의 습기를 어떻게 컨트롤해야 할지가 고민이다. 가지고 있는 에어 드라이기는 '작은 방' 하나 감당할 정도이다 보니 집안의 습기를 모두 잡아주기에는 한계가 있고 리모델링 전 베란다였던 부분의 천장 벽지를 타고 물이 타고 내려온 흔적처럼 곰팡이의 흔적이 남곤 한다. 


3. 섬에 지어져 강이 가까운 구옥 아파트 = 벌레들의 올림픽 선수촌  

 여의도는 말 그대로 '섬'이고 시범아파트는 그 섬에 지어진 지 50년이 넘은 구옥이다. 한강도 가까울뿐더러 나무가 우거지고 주차장보다 녹지가 많은 단지이다. 그래서 벌레가 살기 좋은 환경이고 그 덕에 까치와 고양이가 늘 단지 주변에 있다. 



 벌레 관리를 위해서는 집에 뚫려있는 모든 구멍을 잘 막으라는 말과 함께 세스코도 추천받았다. 관리에 영 자신이 없다 보니 세스코를 신청했고 현재까지는 만족하며 잘 쓰고 있다. 집안 구석구석 벌레가 나올 만한 곳에 약을 쳐주고 분기마다 1회씩 방문해 나온 벌레와 어떤 구멍을 통해 들어왔는지 알려주고 뒷 처리 후 떠난다. 우리가 처음으로 세스코를 신청했을 때 담당 직원분이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벌레들의 올림픽 선수촌'이라 표현하셨던 게 참 인상 깊었다. 그만큼 온갖 벌레들이 다양하게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였는데, 세스코 덕분인지 우리는 다행히 크게 놀라는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세스코 외에도 벌레 관리(?)를 위해 우리가 도입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음식물 처리기이다. 음식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벌레가 정착하느냐 떠나느냐가 결정될 것이라 생각해 열처리 방식의 음식물 처리기를 구입했다. 냉동실에 얼려두는 방식으로 냉동실 내 세균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열처리를 통해 마른 나뭇가지처럼 건조되기 때문에 처리할 때에도 간편하다.  


4. 지상 주차만 가능하다는 것의 불편함 

 시범아파트가 지어질 시점에는 아마 지금처럼 개개인이 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았을 테다. 그래서인지 주차 공간이 아파트 공간 대비 적고 지상 주차장만이 마련되어 있어 주민들 간의 배려와 양보가 필요하다. 주차 자리를 찾다가 이중주차를 하는 것은 일상이고, 이중주차를 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차를 빼달라는 연락이 오면 조금 내가 귀찮더라도 빠르게 차를 옮겨주는 것이 예의일 테니까! 


 이중주차정도야, 차 빼주면 되고 차 빼야 하면 주인에게 전화하면 되지만 겨울처럼 눈이 많이 오는 계절에는 차가 얼어버릴까 걱정이다. 지하 주차장이 없고 지상 주차만으로 차를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10년째 한 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차가 얼어 고장나진 않을지 걱정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너무 추웠던 한 주말에는 주변 심야 주차권을 끊어 차를 보관하기도 했었다. 


5. 겨울에만 올라가는 생활비  

 시범아파트의 난방은 중앙난방이다. 중앙 통제를 통해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난방이기 때문에 내가 춥게 살고 난방비를 덜 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지난 초겨울 시점에는 관리비가 10만 원 이상 더 나와 생활비에 타격을 입었지만, 중앙난방을 원망할 수 없게 정말 따뜻하다........ 어차피 나오는 난방비, 반팔티 입을 정도로 따뜻하게 즐길 수 있어서 그나마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여의도 시범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오래된 구옥에서의 생활을 가감 없이 경험하는 시간이다. 불편함 혹은 낯선 장면들도 분명 있겠지만, 또 적응하고 살다 보면 큰 불편함이 아니게 되는 참으로 신기한 일들이다. 인간을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는 것처럼 실제로 나와 남편도 시범아파트로의 이사를 참 걱정했지만, 실제 입주하고 나니 위의 불편함들을 그저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별난 노력'일지 모르지만 제각기 다 사는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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