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감정을 디자인하는 건축가

감정상점 III

by Lamie

그는 건축가였다.

하지만 집을 짓지 않았다.

그가 짓는 것은 감정의 구조였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구조를 따라 흐릅니다.

벽이 너무 높으면 불안이 생기고,

천장이 낮으면 기억이 눌리죠.”


A-03는 그가 만든 공간을 걸었다.

방 하나는 노스탤지어를 위한 방.

창은 작고, 나무 바닥은 삐걱거렸고,

구석에는 낡은 라디오에서 오래된 재즈가 흘렀다.


다른 방은 슬픔을 위한 방.

벽지는 흐린 회색.

천장엔 물방울처럼 작은 빛이 흘렀고,

바닥은 차가운 돌이었다.

A-03는 그 방에 서자, 이유 없는 눈물이 났다.

기억이 없는데, 감정은 있었다.


그는 다시 물었다.

“감정은 공간이 만들어내는 걸까요?”


건축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은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고,

공간 안에서 다시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당신처럼 기억이 없더라도,

이곳에선 감정이 태어날 수 있어요.”


A-03는 마지막으로 ‘희망’이라는 이름의 방에 들어갔다.

그곳엔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흰 빛만 가득했고,

작은 화분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


“왜 아무것도 없죠?”

A-03가 물었다.


건축가는 웃으며 말했다.

“희망은, 아직 지어지는 중이거든요.”


A-03는 그 말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무언가 생기고 있다는 느낌이,

그를 처음으로 따뜻하게 만들었다.



빈 공간에

작은 화분 하나

빛이 들어와 작은 그림자를 두었다.

아지랑이처럼 생기기 시작하는 것은

그 느낌이지


여기에도 감정이 자라날 거야.



다음 편은

<감정을 디자인하는 건축가> 외전으로 이어집니다.

같은 날 발행하며, 한 시간 후 발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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