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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도둑

16장. 소설가를 만났던 순간

기억도둑

by Lamie

잊고 있던 기억이 문을 열고 쏟아져 나왔다.

희미하게 번져 있던 조각들이 맞춰지듯, 어둠 속에서 선명해졌다.


그녀는, 소설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어디에서?

언제?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기억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마치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듯, 몸이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방은 어두웠다.


커튼이 닫혀 있었고, 책장에는 빛바랜 원고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잉크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책상 위.
낡은 타자기.
그 위에 놓인 원고.


그리고,


책상 맞은편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의자에 기댄 채, 손끝으로 펜을 굴리고 있던 사람.


소설가.


그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숨이 멎을 듯한 감각을 느꼈다.


“당신이…”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소설가인가요?”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라고요?”


그는 손끝으로 원고를 가볍게 두드렸다.


“소설가는 내가 아닙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대체 누가—”


그때, 그의 손끝이 원고의 첫 페이지를 가볍게 넘겼다.


그녀는 그 위에 적힌 문장을 보았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숨이 멎었다.


그곳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한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원고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당신은, 이 이야기가 처음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녀는 입술이 바짝 말라가는 걸 느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당신은 이 이야기를 이미 여러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순간,


공기가 멈췄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반복?”


그는 조용히 웃었다.

“당신은, 이미 여러 번 사라졌습니다.”


그녀의 손끝이 떨렸다.
“그럴 리가 없어요.”


그는 책상 위의 원고를 천천히 넘겼다.


페이지마다 적혀 있던 이야기들.
그녀가 겪었던 일들.
레스토랑, 기차역, 흑백 사진.


그리고—


소설가를 찾아야 한다는 문장까지.


그녀는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이건, 전부—


이미 쓰인 이야기였다.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섰다.
“이게 무슨 장난이에요?”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장난이 아닙니다.”


그녀는 손끝을 꽉 움켜쥐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대체…”


그녀는 숨을 들이쉬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누가 쓴 거죠?”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그곳에는, 단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소설가의 이름을 알게 된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그 문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 다음 장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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