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크 Dec 11. 2021

우리 둘이 살까

프롤로그

언제였더라, 한 4년전쯤 너를 생각하며 쓴 시가 있었어. 그 시가 오늘 아침 다시 떠오르더라, 우리 둘이 살까?


********

재개발지역

⠀⠀⠀⠀⠀⠀⠀⠀⠀⠀⠀⠀⠀⠀⠀⠀⠀

방 두 개짜리 집을 구할게요.

건물 옆 엉켜있는 전신주의 줄들을 보지 말고 화단 위 피어난 꽃을 봐요. 깨진 계단의 타일은 보지 말고 수줍게 놓여진 젓가락과 숟가락 모두 두 개씩인 식탁을 바라봐줘요. 망가진 오르골을 모른 척 지나쳐 빳빳하게 다려진 흰 색의 침대보를 쓰다듬어줘요.

당신을 위해서 암막커튼을 준비했어요.

커튼을 내리면 이곳은 우리만의 거대한 우주가 되겠지요. 모든 것은 느리고 빠르게. 우리는 함께 폭발하고 확장되며 소멸해 갈 거에요. 최초의 빅뱅의 순간을 기억하나요.

추운 겨울날 히터가 잘 나오지 않던 어느 상가 지하 독서실. 양 볼의 움푹 파인 보조개를 보면 당신은 아랫배가 간질간질해진다고 고백했어요. 그런 당신 앞에서 나는 자꾸만 눈이 감겼어요. 파닥일수록 부서져가는 나비를 잠재우려 먹은 약인데, 결국 잠이 든 건 나비가 아니라 나였던 그날 밤.

당신은 대흥동에서 상수동까지 잠이 든 날 데리고 산책했지요.

시끄럽게 공사중인 집 앞 도로에 서서 그대 이름을 불러봐요.

내내 오물거리다가 뱉어낸 당신의 이름에 먼지가 내려 앉아요.

너무 늦지는 말아요.

나 방 두 개짜리 집을 구할게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