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토요일 오전 열 시 반. 나는 태국 북부의 조그마한 마을, 빠이로 가는 7인승 지프차를 타고 있었다. 한 사람당 150밧만 내면 치앙마이 국제공항에서부터 빠이까지 데려다주는 오래된 여행자용 지프였다. 싼 운임 탓에, 지프 안에서 에어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프 안에는 마지막으로 올라탄 나를 포함해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금발머리 여자 둘, 아직 얼굴의 여드름도 가시지 않아 보이는 백인 남자아이 둘, 동양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까지 모두 일곱이었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지프 안은 곧 서로의 호흡으로 후덥지근해졌다.
베트남 여행 중, 한인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한 한국인 오빠는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너덜너덜하게 빛바랜 신발과 자른 지 한 참은 되어 보이는 부스스한 머리는, 한 눈에도 그가 장기 여행자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는 베트남을 지나 태국으로 간다는 나에게 빠이를 추천해줬다.
“빠이는 느린 걸음으로도 1시간이면 동네의 상점들까지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조그마한 시골 동네야.”
한 손에 얼음이 잔뜩 들어간 맥주잔을 든 채, 조용히 소파에 걸쳐 앉아 있던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빠이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지.”
내 자리는 운전석 바로 뒷 좌석이었다. 옆에는 동양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 중국인인가, 한국인인가,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으려니 그가 먼저, 한국말로 물어왔다.
“한국인이세요?”
“아, 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그가 다시 물었다.
“빠이는 처음이세요?”
“네, 그쪽은…….”
“아, 저도 빠이는 처음이에요.”
어색한 분위기에 별로 할 말이 없기도 했지만 서도, 나는 곧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지프가 출발하자마자 멀미가 시작되었거든. 그때 난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빠이를 추천했지만, 아무도 빠이로 가는 길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던 사실을 떠올렸다. 세 개의 산을 넘어야 하며, 그 산들은 900개가 넘는 커브 길을 숨기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을 말이다. 굽이 치는 커브 길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곧 앞 좌석에 얼굴을 파묻었고 딴생각을 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내 안과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간이 경계를 잃고 소용돌이치는 급류 속에서 넘실댔다. 양 입술을 꽉 닫은 채 낮은 소리로 생각했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텐데. 슬쩍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보았지만 거기에는 나와 달리 고개를 좌우로 돌려대며 세상 좋게 자고 있는 남자의 얼굴만이 보였다.
2시간 만인가, 차가 간이 휴게소에 멈춰 섰다. 오래된 차는 열기와 함께 사람들을 차 밖으로 쏟아냈다. 휴게소라고 해 보았자 5평 남짓 될까, 나무를 얼기설기 쌓아놓은 오두막이었다. 그곳에선 태국 특유의 과자들과 익숙한 몇 가지 과일, 음료수 따위를 팔고 있었다. 조그마한 나무 걸상에는 평생 그곳에만 앉아있던 것 같던 할머니가 앉아서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멀미를 하던 사람은 나뿐이었는지, 차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상점 앞 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과자며 음료수며 손에 잔뜩 든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나는 상점 옆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침 길 건너편에는 <Pai 45km>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이 보였고, 목구멍에서는 신물이 올라왔다.
사실 나의 스물일곱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그랬다. 안갯속에 있으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안개에 몸이 젖어 들어가는 거라고. 그 당시 바로 내가 그랬다. 내 주변은 더 이상 덧칠할 것도 없는 불안과 우울이라는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제대로 살아 볼 의지도, 그렇다고 그곳을 빠져나올 용기도 없었던 나는 빠르게 안갯속 습기에 몸을 내주었다. 그리고 그 습기는 내 몸 구석구석을 적시고 커다란 곰팡이 자국을 만들어 나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을 때, 나는 도망치듯 여행을 떠났다. 베트남으로, 라오스로, 그리고 태국으로.
내 옆에서 세상모른 채 자고 있던 그는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커다랗고 까만 카메라 가방에서 그만큼 커다랗고 단단해 보이는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그는 왼손으로 카메라 헤드를 잡은 뒤, 한참 동안 줌을 이리저리 돌리며 길 건너편의 표지판을 찍나 싶더니 곧 도로 사진기를 가방 속에 넣었다.
“Then let’s go, friends. 이제 가자, 친구들.” 운전사는 길 가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며 소리쳤다. 나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는 다시 지프에 올라탔다. 지나왔던 것만큼 이나 많은 커브 길을 지나고 나서였을까 그제야 차의 움직임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혼잣말하듯 말을 건네었다.
“이제부터는 평지일 거예요.”
나는 앞 좌석 시트에 파묻어 두었던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원래 그렇게 멀미를 많이 해요?”
“아니, 그렇지는 않은데.”
말을 우물쭈물하는 사이, 거짓말처럼 3 시간 넘게 계속되던 커브 길은 끝나고 차창 너머 넓은 구릉 밭이 펼쳐졌다. 지평선처럼 펼쳐진 밭의 녹음은 바람결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이제야 끝났구나 싶었다는 생각도 잠시, 사흘 뒤 다시 그 길을 되돌아 올 생각하니 한숨이 먼저 나왔다. 한숨을 쉬던 나를 바라보더니 그는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는 듯이 빙긋 웃었다. 그의 미소 뒤로 창 밖의 햇살이 내려와 눈 부시게 반짝하고 흩어졌다. 그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빠이로 가는 길이 악명 높다는 거 몰랐어요? 멀미가 이렇게 심하면서 빠이는 왜 가는 거예요?”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아서 몰랐어요. 그냥, 가보고 싶어서요.”
그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 저는 빠이를 갔다가 이제 육로로 베트남으로 넘어가려고요. 친한 친구가 빠이에 꼭 가보라고 그리고 좋은 바가 하나 있다고 추천 주기도 해서.”
그러다 누구도 묻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멋쩍은 듯이 정수리를 긁었다.
곧 지프는 터질 듯한 열기와 함께 빠이로 도착했다. 나는 어떻게 이렇게 오래된 지프가 고장 나지 않은 채 3개의 산을 넘어올 수 있었는지 궁금할 다름이었다. 나와 그는 뜨거운 지프에서 토해내듯 뱉어졌고 각자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찾을 요량으로 큰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 5분이나 걸었을까, 우리는 마을의 중심가인 조그마한 강에 도착했다. 그가 말했다.
“저는 조금 저렴한 숙소를 찾고 있어요.”
나는 차를 타고 오던 길이 너무 고되기도 했고, 여행이 끝나가는 무렵이기도 해서 조금 편하게 쉴 곳이 필요했다.
“아, 저는 조금 편하게 쉬고 싶어서.”
그는 내 대답을 예상했던 것 마냥 “그럼, 잘 쉬고 나중에 봐요.”라는 말과 함께 오른팔을 들어 좌우로 크게 흔든 뒤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일정이나 연락처도 묻지 않고 나중에 보자는 그가 의아했던 나는 멀뚱히 서서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가던 길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걸어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빠이는 조그마한 동네라……. 나중에 봐요!”
나는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앞니를 드러낸 채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
빠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조그마하고 아담한 동네였다. 얼마 걸어가지 않아서 마을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강과 가까운 곳에, 지어진 지는 오래되었지만 깨끗하고 무엇보다 에어컨이 장착된 방갈로 스타일의 숙소를 찾아가 짐을 풀었다. 에어컨이 없는 방과 비교했을 때 가격은 쫌 비쌌지만 계속되었던 멀미 때문에 지쳐있던 난, 무엇보다 선선한 바람이 절실했다. 방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 2시간쯤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메스꺼웠던 속은 조금은 진정된 듯했고 밖은 아직도 환했지만 머리 꼭대기에 있던 해는 조금 기울어진 듯했다. 숙소 밖으로 보이는 도로는 드문드문 보이는 관광객들과 함께 한적한 공기만이 가득 차있었고 대부분의 가게들은 이제야 느긋하게 문 열 채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빠이는에서는 나름 가장 크다는 메인 도로의 길이가 채 100m가 안 되었다. 도로의 끝에서, 도로의 끝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마을은 조그마했다. 숙소 앞 골목길을 지나와, 길 모퉁이에 가판대를 세워놓고 과일 주스를 파는 가게에 들러서 망고 주스를 시켰다. 주인은 양손을 쫙 펴서 감싸도 다 감싸 지지 않을 것 같이 커다란 망고를 숭숭 썰어서 믹서에 넣고 돌렸다. 샛노란 색으로 갈아 뭉개진 망고는 동남아의 따스한 햇빛이 가득 담겨있었고 그보다 조금 더 달았다.
나름대로 동네 한 바퀴를 어슬렁거리며 구경을 마친 것 같은데도 하늘은 여전히 밝았고, 시곗바늘은 6시를 조금 넘겼다. 6시의 빠이는 아직 술을 마시기에는 조금 밝았고 그렇다고 숙소로 그냥 돌아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갈까 아니면 가볍게 한잔을 할까 망설였고, 그때 길 건너편에서 누가 “어!”라고 외치며 나에게로 걸어왔다. 나중에 보자며 웃던 그였다. 그는 나에게 동의를 구하듯 말을 했다.
“봐요.”
그리곤 입 꼬리를 샐쭉하게 올렸다.
”여기서는 죄를 지으면 안 된대요. 하도 조그마한 동네라서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된다고.”
그는 조그맣게 입을 열어 동그란 바람 소리가 날 것처럼 웃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함께 술 집을 찾아 나섰고 그는 친구에게 소개받은 술 집이 있다며 나를 골목길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지코 바’라는 이름의 조그마한 바가 있었다. 야자수 나무 잎으로 지붕을 가득 덮어놓은 덕에 바는 마치 자그마한 동굴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천장에 매달아 놓은 인도 풍의 모빌 때문에 더욱 그러한 분위기가 났다. 그와 나는 빨간색 모빌이 늘어져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주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우리에게로 다가왔어. 자신의 이름을 ‘지코’라고 소개한 이 남자는 꼬불꼬불한 레게 머리를 하고 있었고 꼬불꼬불한 머리만큼이나 참 수다스러웠다. ‘빠이에는 무슨 일로 왔니.’, ‘온지는 얼마나 되었니.’, ’ 얼마나 머물거니.’, 지코는 한참 동안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테이블로 초록빛으로 물든 칵테일 잔을 두 개 가져왔다.
“자, 선물이야. 우리가 친구가 된 선물.”
그는 목 선의 커다란 도마뱀을 드러내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해했다. 그러자 지코는 양 쪽의 눈썹을 꿈틀대며 말했다.
“대신 원 샷이야.”
뜻밖의 호의에 얼떨떨했지만 우리는 지코의 말대로 호기롭게 한 번에 술잔을 비웠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화한 느낌과 함께 옅은 민트 향이 코 안에서 넘실거렸다. 그와 나는 서로를 바라본 채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우리를 보더니 지코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Welcome to Pai 빠이에 온 것을 축하해.”
지코의 익살스러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알코올 기운 때문이었을까. 우리 사이의 공기는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나는 태국 맥주 인창을 시켰고, 그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고민하는 듯하더니 태국 위스키인 쌩똠을 시켰다. 젬베 리듬과 함께 밥 말리의 목소리가 가게 안을 채워나갔다. 그는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을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혼잣말처럼 그가 말했다.
“이 노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예요.”
우리는 말없이 한참 동안 바 안을 가득 채워나가는 노래를 들었다. 나는 문득 아까도 보았던 그의 커다란 카메라 가방이 궁금해졌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하시나 봐요.”
카메라 가방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그는 가방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아, 네. 사진 찍는 게 취미예요.”라고 대답했다.
“뭐, 하는 사람이에요?”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네, 맞아요. 짧은 이야기를 쓰고 있죠.”
다들 각자 그렇고 그런 의미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듯이 나에게는 글을 쓴다는 것이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곤 했다. ‘글을 쓰고 있다.’라는 건 무엇인가 녹이 슬지 않는 태엽과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내가 녹이 쓴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동경을 가지는 것 일수도 있다. 마치 ‘오늘 아침에는 빵을 먹었어요.’라는 톤으로 덤덤하게 글을 쓴다고 대답하는 그가 나는 좋아졌다. 나는 의자에 기대고 있던 등을 앞으로 당겨 테이블 가까이 갔고 어린아이들의 스무고개처럼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럼, 주로 어떤 이야기를 쓰세요?”
그는 살짝 고갤 숙이며 손에 쥔 위스키 잔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는 사랑에 대한 짧은 이야기 쓰는 걸 좋아해요.”
“그럼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는 누구예요?”
“단편소설이라면 레이먼드 카버요.”
“그럼, 시인은요?”
“대학 입학 때, 아 제가 문예 창작과를 다녔거든요. 문예 창작과 면접시험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해서……. 마치 면접시험 같네요.”
“아,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무례했다면 죄송해요.”
나는 순간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아니에요, 장난이에요.”
그는 장난스레 왼쪽 눈을 살짝 감고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저는 김소월을 좋아해서, 면접 보러 가서도 김소월이 좋다고 대답했거든요. 그랬더니 교수님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깐 그가 쓴 시들 중에 술집에서 기생들에게 ‘옛 다, 너도 하나 지어 주마’하면서 쓴 게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뭐 좋지 않아요?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지어주는 시 한 수라는 거?”
그는 장난꾸러기처럼 킬킬대며 웃으며 대답했다. 마침 맥주의 탄산처럼 보글보글 취기가 올라왔다. 나는 몸을 일으켜 테이블 앞에 가까이 다가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문학을 배우러 가면 제일 처음 무엇을 배워요?”
그는 왼쪽으로 기운 고개를 세워 나를 쳐다보았어. 그리곤 말했다.
“음……. 제일 처음이요? 너희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배워요.”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오른손을 들어 이마로 흘러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의 가늘고 흰 손가락을 보고 있자니 발목이 시큰거려왔고 아랫배에서부터 따듯한 무언가가 몽글몽글하게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그에게 이런 변화를 들킬까 양손으로 맥주잔을 꼭 쥐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네다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을 만났다. 고양이들은 고양이답지 않게 몸을 배배 꼬며 마치 오랫동안 알던 사이인 냥 우리에게로 먼저 다가왔다. 난 오른손을 흔들며 새끼 고양이에게 소리 내 인사했다.
“안녕?”
그런 나를 바라보던 그는 진지한 표정을 한 채 “태국 고양이에게는 그렇게 인사를 하면 안 돼요.”라고 나를 나무랐다. 그러고선 그는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싸와디캅.”하고 인사했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았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 서로를 바라본 채 웃기 시작했다. 웃음은 한참 동안 멈추지 않았다. 유난히도 밝은 달 빛이 웃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새벽 한 시, 우리는 웃음의 빛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내가 묶고 있는 숙소 앞에 다다랐을 즈음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잘 자요, 그리고 또 봐요.” 그리곤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 걸어갔다. 처음 만나서 헤어지던 때처럼, 우린 우연히 만났고 다시 기약 없이 헤어졌다.
그와 헤어진 후, 나는 숙소의 방 문을 열었다. 그가 했던 ‘너희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이 좋아 한참을 혼자 되뇌었다. 입 속에서 오물거릴수록 그 말은 단 맛이 나다가 이내 짭조름한 맛이 났다. 방에는 환한 보름달 탓인지 달 빛이 한가득 차 있었다. 옷을 입고 잠을 자려 침대에 누웠지만 나는 이내 뒤척이며 다시 일어났고 한 겹, 한 겹 옷을 벗었다. 하얀색 티셔츠를 벗고, 하늘색 줄무늬 면바지를 벗고, 흰색 팬티를 벗었다. 살 갓에 닿는 침대보의 감촉은 어색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 몸인 채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기분 좋은 나른함이 방 안을 감싸 안았다. 난 침대보 안에서 발가락을 움직여보았다. 몇 년 만이었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푹 잠을 잔 건. 침대보를 걷어내니 햇살이 그대로 내 몸에 꽂혀 내렸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기지개를 켰다.
그대로 일어나 어젯밤에 벗어 놓았던 옷을 입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사실 아침이라기보다는 점심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간이었지만 어젯밤 마신 알코올들이 꿈틀대며 피부를 뚫고 올라왔다. 눈곱을 띠면서 혼잣말을 했다. ‘빨리 국물 있는 걸로 해장 좀 해야겠다.’
얼마 걷지 않아서 녹색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몇 개 있던 식당에 앉아서 메뉴 판을 쳐다보았다. 길가는 어젯밤과는 다르게 고요하고 한적했다. 멍하니 한적한 도로를 쳐다보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익숙한 걸음걸이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메뉴 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세수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양치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그와 마주칠 수 없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조금 뒤, 가게를 들어오며 주인에게 인사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메뉴 판 위로 빼 꼼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지금에야 그를 봤다는 듯이 어색하게 “어!”라고 소리쳤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 또한 헤어진 지 열두 시간도 채 안되어서 그를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짐짓 태연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빠이는 좁은 동네잖아요.”
나는 콜라와 함께 닭고기와 숙주나물이 들어간 국수를 시켰고 그는 야채 볶음밥을 시켰다.
“어제는 잘 잤어요?” 라며 그가 물어왔다.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는 오늘 오토바이를 타고 가까운 데 있다는 폭포를 보러 가려고 하는데, 오늘 뭐할 거예요?”
“아, 저는…….”
“별일 없으면 저랑 같이 갈래요?”
사실 어제 무리하게 먹은 술 때문에, 속이 미슥거렸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사실을 말하기에는 조금 창피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좋을 대로 해요.”
“아, 저는 조금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는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뒤, 그는 조그마한 오토바이를 빌려 타러 갔고 나는 동네 한적한 카페에 들어갔다. 몇 가지 종류의 커피와 빵과 함께 조그마한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였다. 가게 안에는 아기자기한 공책, 볼펜 따위들과 함께 ‘Pai 빠이’라고 써져 있는 냉장고 자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빨간, 노란, 검은색으로 알록달록 하게 색칠되어있는 자동차 모양의 자석을 하나 집었다가 그가 생각나서 다시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해가 질 무렵쯤, 우리는 약속하지 않았지만 약속을 한 것 마냥 지코 바에 함께 앉아있었다. 내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에게는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 나는 여행을 이제 끝내는 사람이었고 그는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서로 다른 종류의 기대 혹은 바람들로 나는 그를,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어제와 똑같이 나는 태국 맥주 창을 시켰고, 그걸 바라보던 그도 똑같이 맥주를 주문했다. 바 안에서 흔들리는 불빛의 수만큼이나 많은 맥주병이 우리 테이블에 쌓여갔다. 그와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노래를 듣고 있었고, 우리 사이의 침묵이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다는 점이 난 마음에 들었다. 그를 보면 나무가 생각났다. 뿌리가 굵은 고동색 나무 한 그루. 그리고 왜인지 그는 자신이 나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완 다르게.
교복을 입고 있었을 때는 스무 살이 되면 달력이 넘어감과 동시에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흔들림이 적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시간이 지나갈수록 오히려 확실해 보였던 모든 것은 확신할 수 없어져갔다. 스물일곱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애매해져 갔다. 맥주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릴 때쯤, 나도 모르게 그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떤 사람이에요, 그쪽은?”
내 눈앞에는 약간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가 있었다. 난 고개를 숙였다. 어떤 사람이냐니. 이렇게 멍청한 질문이라니. 다시 고개 들어 그를 쳐다보았을 때 그는 당황했던 표정을 거두고 빤히 내 눈을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이라……. 전 잃은 게 많고 그리고 그만큼 얻은 게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솔직히 다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면 바보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잃은 게 많고 그만큼 얻은 게 많다니. 하지만 그는 대답하는 내내 흔들림 없이 내 눈을 쳐다보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그가 물었다.
“그럼 그쪽은, 그쪽은 어떤 사람에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빙그르르 돌던 술기운 탓이었는지 만난 지 이틀밖에 안 되었던 그에게 나는 너무나 사소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던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습죠. 자기 자신도 잘 모른다는 게. 근데 진짜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는데, 다 잘 모르겠는데 그 속에서 알겠다 싶은 게 딱 하나 있더라고요. 나는 나를 잘 모른다. 여행을 떠나면 뭐, 사람들이 그러는데 자기 자신을 알아 간다고들 하잖아요. 근데 저는 여전히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아, 근데 이름이 뭐예요?”
“상우예요. 김 상우.”
“그런데 그쪽을 보면, 아, 상우 씨를 보면 상우 씨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사람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부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그래서요.”
두서없이 말을 이어가는 나를 그는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런 대답도, 어떠한 제스처도 없었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도, 기다리지 않는 것도 아닌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 지코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어깨를 흔들며 그와 내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잔이 넘칠 만큼 가득한 위스키 두 잔과 함께.
“선물이야, 친구들. 대신…....”
지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대답했다.
“원 샷이지.”
그는 아무렇지 않게 위스키 한 잔을 원 샷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독한 위스키에 곧 코 끝이 아려왔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내가 코를 찡긋하면 지금 이 모든 순간이 바스러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무슨 일 때문인지 의아해졌다.
“여행의 마지막 밤인데, 마지막 밤을 이렇게 따분하게 보낼 수는 없지 않아요?”
“전혀 따분하지 않은 데…….”
“그래도 여행의 마지막 밤인데, 조금 더 신나게 놀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갑자기 내 손목을 잡고 급한 약속이 있는 사람 마냥 지코 바 밖으로 뛰어나갔다.
“우리 라이브 들으러 갈래요?”
그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앞장서서 골목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콘트라베이스와 드럼 그리고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는 한 라이브 바 앞에서 그는 걸음을 멈췄고 ‘이곳은 어때요?’라는 듯이 나를 보며 오른쪽 눈을 찡끗하고 감았다 떴다.
라이브 바에서는 한 때 유행했던 팝송들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손을 번쩍 들어서 웨이터에게 커다란 나무 바스켓에 들어있는 위스키를 주문했다. 코코넛 위스키가 바스켓에 얼음과 함께 한가득 담겨 나왔고 그와 나는 빨대를 꽂아놓고 경쟁하듯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다. ‘ABBA’의 오래된 노래들을 연주하던 밴드의 공연은 점점 더 무르익어 갔다. ‘Waterloo’가 연주되기 시작하자 머리가 반쯤 벗어진 갈색 피부의 한 아저씨는 밴드 앞으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치 닭이 모이를 먹는 듯한 자세로 몸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춤추는 아저씨를 보며 가게 안의 사람들은 모두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웃을수록 아저씨는 더욱더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춤을 췄다. 아저씨는 내 앞으로 다가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밴드 앞으로 나가서 그와 함께 몸을 흔들었다. 어느새 연주는 좀 더 빠른 비트의 노래로 바뀌었고 나는 자리에 앉아 있던 그의 손을 잡고 그를 무대 앞으로 끌어당겼다. 우리는 노래에 맞춰서 함께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시간은 멈춘 듯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였고 그의 숨결이 내 귓가에 스칠 정도로 우리는 가까워졌다. 나는 그의 귓가에 속삭이고 싶었다. ‘나는 어제 처음으로 발가벗은 채로 잠이 들었어요.’ 그러면 그가 익숙한 그 웃음과 함께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내 이마에 키스해 줄 것만 같았다.
후끈거렸던 가게 안의 열기 탓이었는지, 숙소로 가기 위해 나온 빠이의 밤공기는 여름답지 않게 선선했다. 그와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거리를 걸었다. 그 밤은 우리 둘만을 위해서 깨어있는 것 같았다. 나란히 걸어가던 도중 그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커 보이는 누런 색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대고 있었다. 우린 둘 다 얼어붙었다. 그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조금씩 뒷걸음칠 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개는 침을 흘리며 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붙잡았다.
“움직이면 안 돼요. 움직이면 개가 더 흥분해서 덤벼든다고 배웠어요.”
그와 나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개를 쳐다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단 몇 초의 시간이었겠지만 몇십 분이 흐른 것만 같았다. 그때 우리 옆으로 빨간색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개는 우리를 보며 으르렁대던 것을 멈추고 그 오토바이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잡았던 그의 손을 놓았다. 그의 왼편 종아리는 빨갛게 부어있었다.
“혹시 물린 거예요?”
그는 나를 보면서 긴 숨을 내쉬었다.
“아마, 그런 것 같죠?”
“광견병 같은 거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피만 안 나면 괜찮은 걸로 알고 있으니깐, 괜찮을 거예요. 뭐. 근데 하긴 저 개가 쫌 미쳐 보이기는 했어요. 그렇죠?” 그는 농담을 던졌고 나는 눈을 흘겼다.
“사실 제가 개를 되게 무서워하거든요. 7살 때인가 할머니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에 물렸던 적이 있어서.”
그리고는 그가 아까 잡았던 내 손을 다시 잡으며 말했다
“근데 참……. 아까 너무 세게 손을 잡아서 깜짝 놀랐어요.”
내가 묵고 있는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안녕.”하고 인사했다.
“잘 들어가고, 한국에도 잘 가구요. 우리, 나중에 또 봐요.”라고 인사하는 그에게 한국은 빠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그처럼 아무렇지 않게 “안녕히 가세요, 여행 조심하시고요.”라고 인사했다. 그런 나에게 그는 습관 같은 미소를 지어주고는 뒤돌아서 걸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 그가 걸어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서있었다. 한 열 걸음쯤 걸어갔을까, 그가 뒤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양손을 모으고 환하게 웃더니 “사와디 캅.”하고 인사했다. 막상 그와 헤어지고 나서야 그를 주려고 샀던 가방 속에 조그마한 냉장고 자석이 생각났다.
비행기를 타러 느지막이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했다. 왜인지 자꾸 맥주잔을 쥐던 하얀 손과 가끔 시선을 떨어뜨린 채 웃던 웃음들이 생각났다. 겨우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의 문턱에서 그와 걸었던 거리의 달빛과 습도가 나를 어지럽게 했다. 사실 짧은 이야기를 쓴다는 그가 좋아서 저녁이 되기만을 그래서 그 술집 그 자리에서 그를 볼 수 있기를 기다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준비 없이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이미 흠뻑 젖어버려서 물기를 뚝뚝 떨어뜨리는 나는 이제야 나에게 한 가지가 확실해진다고 생각했다.
짐을 부치고 체크인을 하려고 공항 카운터 앞에 앉아있는 내 앞으로 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 헛것을 보고 있나’라는 생각에 들어서 웃음이 났다.
“가영 씨, 혹시 담배 있어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 거지, 그가 진짜 내 앞에 있는 그가, 그 사람이 맞는 건가? 이 사람은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 설마, 나를 보러 온 건가? 그 순간 온갖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리고는 댐이 터진 듯 머릿속은 소용돌이 속으로 잠겨 버렸고 나는 입술을 옴짝달싹할 수 없어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그를 올려다봤다. 그런 나를 보면서 그는 마치 이곳에서 나와 만날 약속을 해놓고 헤어진 사람처럼 무덤덤하게
“담배나 사러 갈래요?”라고 말했다.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을 못 이겨내겠다는 것처럼 명치가 아릿해져 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서서 그를 바라보는 나에게 그가 웃으며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어제 그 미친개에 물렸던 곳에. 아 맞다, 미친개라고 하면 안 되지.” 그는 킁킁대며 웃었다
“어쨌든 그곳에 조그마하게 딱지가 졌더라 구요. 친구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광견병이 의심된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어젯밤에 가영 씨가 치앙마이에서 인천 가는 직항이 있다고 말해준 게 생각나서……. 오늘 아침 일찍 도착해서 예매해놨어요. 같이 가게 되었네요.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아, 근데 담배 피우고 싶은데 담배는 어디서 파는지 찾을 수가 없네.”
그는 기다란 팔다리를 휘저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고 나는 여행용 배낭을 앞뒤로 멘 채, 그를 따라 걸었다. 그는 공항 안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가서 담배를 샀고 곧장 입에 물고는 흡연 테라스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런 그의 옆에 앉아서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담배 연기 때문인지 머리가 빙그르르 돌며 땅이 울렁거렸고,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멀미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