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동거기
여전히 부정과 인정 사이를 오가는 나의 우울증 동거기.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나는 평생 블랙독과 살았다"며 평소 자신을 괴롭혔던 우울증을 검은 개에 비유한 이후, 블랙독은 우울증, 낙담 등으로 풀이된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오래전부터 우울했다.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했던 것은 9살 때였다. 엄마가 어린 동생을 데리고 시장을 보러 간 사이 색종이 뒤편에 짧은 편지를 썼다.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요. 잘 지내요. 미안해요.” 그리고 그 색종이를 현관문 앞에 고이 놓아둔 채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있었던 게 9살이었다. 사는 게 피로하다고 생각했다. ‘피로하다’는 것이 내 감정이었다.
고작 9년 살았던 네가 뭘 안다고 어처구니가 없다가도. 근데 사실 그때 내가 알았던 본질의 그것이 지금 내가 아는 것과 크게 다를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그 9살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오히려 유복한 환경이었다. 평범한 가족들에게 평범하게 사랑받으며 자라왔었다. 어떠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부끄러웠다, 나의 결핍이. 아무것도 어려움 없이 자란 내가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는 건 배부른 소리라는 생각에 나약한 나를 미워하기도 했다.
우울증이라는 것은 감정과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건 뇌의 신경전달 물질에 변화가 생긴 거라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여전히 나는 나의 우울증을 감정과 의지의 영역에 놓고 나를 다그친다. “왜 이렇게 나약한 거야”.
남들에게 이야기하기는 쉽다. “괜찮아, 그건 뇌의 문제야. 너의 문제가 아니야. 너는 잘하고 있어. 너를 미워하지 마”. 그러면서 나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미워한다. 못마땅해하고, 무시한다.
처음으로 정신과에 간 것은 28살 때였다. 문고리 3년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를 방문하는데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3년이 걸린다는, 그만큼 정신과에 닿기 전에 사람들이 갖는 심리적 장애를 뜻한다) 시간을 지나고였다. 그 이전 3년 전부터 잠을 못 자기 시작했다. 자려고 하면 심장마비가 나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자지 못하고 밤을 새운 것이 여러 번이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것이 공황장애였다는 것을. 잠을 자지 못하고 숨을 쉴 수 없던 때마다 나는 구석을 찾아갔다. 책상의 밑, 혹은 욕조 안, 침대 밑 좁은 공간에 들어가서 몸은 최대한 웅크리면 잠을 잘 수 있었다.
단지 스트레스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울기 시작할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요가 스트레칭용 끈으로 목을 멜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때, 눈에 보이는 것들이 죽음의 도구로 생각될 때 그제야 회사를 퇴사하고 정신과를 찾아갔다.
정신과 5년, 아직도 나는 나를 부정하고 때로는 인정하는 그 초기의 단계에 머물러있다. 나의 증상은 나아지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래도 요즘에는 우울 삽화 중에서도 이게 끝이 아니라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경험적으로 갖고 산다.
나를 포함해 외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보이지 않는 많은 우울증 환자들을 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기도 하고, 오히려 에너지 넘치고 많은 일들을 성취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자주 무너진다. 매일 자기 전에 맥주 2캔을 마시고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일어나지 못한 채 일주일 휴가를 다 보내기도 한다.
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나를 인정해나가는 나의 우울증 동거 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