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하면 죽는 병 걸림

프롤로그

by 송코튼
난 특별해!


질풍노도의 10대 시절, 대다수의 사람들과 같이, 나는 항상 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특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부모에게 미움받고, 오빠에게 늘 차별받는 이유가 나의 ‘무난함’에 있어서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빠는 전교회장을 연임하는 공부 잘하는 우등생에 효자인 데다 외모도 딱히 모난 곳이 없기까지 한, 그야말로 ‘특출함’ 그 자체였다. 주위에서 칭찬이 끊이지 않으며 만나는 학부모마다 ‘어떻게 아들을 그렇게 잘 키웠냐’며 비결을 묻는 반짝이는 빛 그 자체였다.


나야 뭐…… 말해 뭘 하겠는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의 무난함에는 그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물론 오빠의 특별함에도. 우린 그저 다른 곳에 재능이 있는 두 명의 다른 인격체였을 뿐. 그러나 특별함을 추앙하는 나의 고집은 꽤 오랜 기간 이어져 20대까지 집어삼켜 버렸다. 아마도 언젠간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끈질기게 이어진 나의 고집이 폭풍우 속 강아지풀처럼 꺾였던 날은. 어쩔 수 없이, 나의 쓰디쓴 무난함을 삼켜야 했던 그날은. 유학 중의 어느 하루였다. 나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나와 같은 문제를 극복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며 해결책을 찾곤 했었고, 그날도 나는 어느 미국유학생의 책을 집어 들었다.


책에는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내가 겪어온 일들과 거의 비슷한 내용들이 죽 이어졌고, 나는 지은이가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겪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유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좋을지.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매일 카카오톡으로 폭언을 쏟아내고 있는 부모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선 내가 대체 어떤 일을 해야 좋을지 말이다. 미국 대학의 장학금 공략 방식이나, 유학생 신분으로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팁이나, 한인회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의 종류 같은 유용한 정보 말이다.


물론 당시 나는 이미 모든 정보들을 빠싹하게 파악하고 있던 상태였지만, 나와 같은 누군가가 이 어려운 목표를 달성해 내는 감동 일화를 읽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설렘과 기대로 가슴이 벅차오른 상태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그래!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외치고 싶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특별하니까.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니까. 어떤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는 것이 이야기 속 주인공의 특징이니까.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옳은 전개였다.


책의 중반쯤 갔을 때 드디어 경제적 상황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부분을 읽고 곧장 책장을 덮어버렸다.


“대체 왜 이딴 책을 쓰는 거야?”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가. “그럼 그렇지…” 눈물을 글썽이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가. “이 더러운, 불공평한 세상!” 다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책을 노려보았다가.


결국, 조용히 울음을 터뜨렸다.


책에는 대충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오늘은 유학을 중단하고 돌아가는 친구의 송별 파티를 열었다. 주위의 꽤 많은 친구들이 학비와 생활비로 인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치과의사인 아버지가 용돈을 넉넉하게 챙겨주신 덕에 그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내가 읽은 마지막 문장이었다.


오오, 난 특별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을 잡고 살아가는 것. 그것은 무난한 나에겐 허락되지 않은 특별한 인생이었다. 혹자는 유학을 떠난 것 자체가 충분히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와 과정을 듣고 나면 그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책장을 덮고, 짐을 싸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눈물로 얼룩진 참으로 무난한 퇴장이었다.



그렇게 나는 돌아갔다.


사이비 종교의 소굴이 되어있을,

그 누구도 나를 반기지 않는,

차마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내 무난함의 고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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