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에 관한 무난한 고찰
특별함은 정말 특별한 걸까?
사전에 따르면 ‘특별하다’는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통’은 무슨 뜻일까?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이에 따라 나는 꽤 오랜 기간 부모의 눈에 ‘흔히 찾아볼 수 없으며, 남들보다 뛰어난 인간’으로 보이기를 열망했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그러다 문득, 이 특별함이라는 것은 ‘예쁘다’와 같이 굉장히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함을 판단하는 ‘보통’이라는 기준은 결국 우리가 살아오면서 보거나 목격한 제한된 것들을 토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만 명의 사람이 있으면 특별함에 대한 만 개의 기준이 생길 것이고, 개인의 경험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특별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흔해 빠진 무언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친구 A를 아주 특별하게 생각한다. A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노래를 가장 잘 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대손손 노래를 잘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의 눈에 A는 평범해 보일 것이다.
그럼 A는 특별한 걸까? 평범한 걸까?
정답은 ‘아무래도 상관없다’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A의 노래를 일일이 들려준 뒤 투표를 해 평범하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나에게는 특별한 존재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풀 죽은 A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해줄 것이다.
“이보게 친구, 다른 사람의 기준이 뭐가 중요한가? 다른 사람에게 특별해지기 위해 자신을 잃는 것보다 더 평범한 것이 어딨 다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 우리는 그 자체로 이미 유일하지 않나? 특별함 같은 건 개나 줘버리고 치즈돈까스나 먹으러 갑세.”
내가 이런 일련의 사고를 거치며 깨달은 두 가지는:
1.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다.
2. 인류의 진보를 위해 도전하는 NASA의 과학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불가능한 목표를 포기하고 나 잘난 맛에 살아갈 마땅한 자유가 있다.
‘누군가에게 특별해지다.‘
이건 토익 점수처럼 공부하고 노력해서 달성할 수 있는 객관적인 목표가 아니다. 이건 상대방의 인생과 경험에 뿌리를 둔 ‘보통’의 정의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끼고 있는 색안경에 달려있는 극도로 주관적인 목표인 것이다. 게다가 이 주관이라는 특권을 거머쥔 자는 기분에 따라 나를 평범함의 냉탕에 담갔다 특별함이라는 온탕에 담갔다 하며 내 영혼을 난도질해 버릴 확률이 다분하다.
“평범한 줄 알았지? 그런데 특별하지롱. 특별하다는 말을 믿었어? 쯧쯧, 어리석은 지고. 사실 평범한데 어쩌지? 켈켈켈!”
“어푸어푸! 더러워서 그냥 생긴 대로 살게! “
난 이미 오래전 부모에게 특별한 딸내미가 되는 목표를 버렸지만, 그래서 아마 지구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그들에겐 못난 자식으로 남겠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생긴 대로 살기 시작한 뒤부터, 나 잘난 맛에 흠뻑 심취한 후부터, 이제야 ‘나’라는 사람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살아있다고 느꼈으니까.
결국, 난 이 문장을 적고 싶었던 것 같다.
난 이제 당신들의 기준 없이도 충분히 행복하다고.